나의 하이든 사랑은 특별하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하이든을 듣고 있다는 것으로 충분한 설명이 될 듯하다.
오늘은 베를린 필/사이먼 래틀의 하이든을 듣고 있다. 래틀의 하이든 음반은 요즘 즐겨듣는 하이든이다.
녹음이 참 좋다. 부드럽고 풍성하며 음반에서 쉽게 느끼기 어려운 합주 현의 매끈함이 있으며 콘서트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실황의 느낌이 잘 담겨있다. 그리고 베를린필 고유의 기름기가 상당히 제거되었다. 카라얀 시절 넘쳤던 기름기는 아바도를 거쳐 래틀에 와 상당히 제거된 듯하다. 여전히 기름기는 남아있지만, 그래도 받아들일 만하다. 더욱이 베를린의 세련됨 섬세함이라는 큰 장점이 있으니 상당히 매력적이다.
어떤 이에게는 녹음이 좋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다. 특히 건조한 홀의 선명한 음을 좋아한다면 좋은 녹음이라 여기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오래된 콘서트 홀에서 듣는 실황은 이처럼 부드럽다. 내가 유럽 콘서트 홀에서의 실황을 좋아하는 이유는 음반에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부드러움과 스튜디오와는 다른 특별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필과 래틀의 하이든 녹음은 부드럽고 섬세하다. 콘트라베이스의 튕김 소리와 팀파니까지 부드럽고 생생하다. 팀파니의 가죽은 여전히 단단히 조여져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88번 교향곡 3악장 미뉴엣), 카라얀 시절 베를린필의 많은 음반에서 흐르는 메마르고 쨍쨍거리는 선명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아쉬움도 있다. 래틀의 아쉬움이라기 보다는 베를린필의 아쉬움이다. 이 음반은 래틀과 녹음 덕을 빼면 듣기 어려운 하이든이었을 수도 있다. 래틀의 하이든에도 베를린필의 약점이 그대로 담겨있다. 바로크와 클래식 음악이라기 보다는 낭만적 느낌이 가미된 연주다. 베른린필의 혈류에서는 낭만성을 제거할 수 없는 듯하다.
카라얀 시절의 베를린필 하이든은 참기 힘든 하이든이었다. 카라얀 시절에 앞선 녹음 중 베를린필과의 유명한 하이든이 있긴 하다. 푸르트벵글러의 88번 연주다. 워낙 유명한 음반이며 가장 낭만적인 하이든 연주 중 하나다. 낭만적 하이든에 대해 좋다 나쁘다는 듣는 이의 몫이기에 내가 평가할 문제는 아니다.
놀라운 것은 50년대 이후부터 2014년까지 카라얀을 제외한다면 베를린필과 함께한 다른 지휘자의 하이든 연주 녹음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60년간 베를린이 카라얀을 제외한 연주녹음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지 않은가? 수많은 지휘자들이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를 함께 했음에도 하이든은 찾기 어렵다. 베를린필의 장점이 독일작곡가 교향곡에서 잘 드러나는 점을 감안한다면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태생 하이든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놀랍다. 음악의 중심은 실황 연주이고 녹음은 부차적인 것이기에 녹음되지 않은 실황연주는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음반으로 보는 베를린필과 하이든의 관계는 비정상적으로 여겨진다. 카라얀 이후 베를린필 상임을 맡은 아바도조차도 하이든은 유럽쳄버오케스트라와 녹음했다.
지금 나는 베를린필의 하이든을 듣고 있다. 베를린필과 래틀의 하이든을 행복하게 듣고 있다. 베를린필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래틀의 하이든은 즐거움과 유쾌함이 충분한 실황 하이든이다. 기름기도 있고 낭만적 하이든이지만, 실황적 느낌의 메끄러운 현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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