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신세계 교향곡을 좋아했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나온 시카고와 줄리니의 음반을 즐겨 들었다. 그 외에도 여러 음반을 즐겨 들었고 카라얀을 뺄 수 없다. 카라얀은 음반으로 발매된 곡보다 발매되지 않은 곡을 오히려 찾기 어려울 만큼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당연하다. 처음 느끼는 음악의 감동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모든 음악에 익숙해진 카라얀이기에 더 깊은 이해와 함께 편견 없는 감상을 않는다면 카라얀은 음악감상의 표본 혹은 신(神)적 존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카라얀 신세계
베를린필과 비엔나필의 화려한 연주는 너무나 달콤하여 카라얀의 드보르작 신세계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웅장하고 아름다운 독일음악을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드보르작 고유의 색이 빠지고 대신 카라얀 색이 입혀진다. 카라얀 음악이다. ‘카라얀’이라는 명품 라벨이 붙은 명품 연주다. 누구도 명반이라는 것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 그러나 나에게는 언젠가부터 피해야 할 음반의 우선 순위에 올랐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명품을 좋아한 적도 거의 없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명품은 명품이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명품이라 하기엔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다. 생산자는 명품의 조건이 될 만큼 낱낱의 제품에 정성을 기울일 수 없다. 진짜 명품은 프라다, 루이비통, 구찌 등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 라벨이 붙여지고 어디서나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사용하고서도 물려줄 만큼의 세월을 뛰어넘는 가치 있는 물건이어야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명반의 기준은 (카라얀 표) 라벨이 아니라 뛰어난 연주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카라얀 연주의 드보르작의 신세계는 명품은 커녕 좋은 음반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드보르작 신세계
드볼작의 신세계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렇지만, 드보르작 자신이 작곡한 9개의 교향곡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음악에 무지한 내가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내가 더 좋아하는 작품이 8번, 7번, 6번, 4, 3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확신에 찬 기술에 공감이 된다.
“However, the Symphony No. 9 is in no way superior to the Symphony No. 6 in D Major (1880) or the Symphony No. 8 in G Major (1889) …”
“9번 교향곡은 6번이나 8번 교향곡보다 절대 더 나은 작품이 아니다.”
9번 교향곡 신세계가 6번이나 8번 교향곡보다 어느 면에서도 더 나은 점을 찾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여행과 자연을 좋아한 드보르작이 미국에 머무는 동안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흑인 영가(Afro American Spritual music)가 2악장에 사용된 것과 1893년 뉴욕필이 초연한 덕에 유명해진 것이지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유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세계 교향곡을 지배하는 선율은 흑인영가도 미국적 노래도 아니다. 흑인 영가에서 고향을 느끼고 영감을 얻은 만큼이나 신세계는 보헤미안 색체가 강한 작품이다. 실제로 드보르작은 향수병 탓에 미국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프랑스인의 신계계
내가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많은 프랑스인이 체코필의 드보르작 신세계에 빠져있는 것을 보았다. 카라얀의 신세계는 먹을 것 없을 때 먹는 불량식품 취급이었다. 당시는 충격이었다. 카라얀 연주 좋은데 왜 그럴까 이해가 어려웠다. 그리고 어느 날 내 방에는 체코필의 신세계가 흐르고 있었다. 첫 음부터 충격이었다. 내가 알던 음과 달랐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토속적 울림이 계속되었다. 그리고는 카라얀 음반을 바꾸었다. 어라? ~ 이건 독일 음악이었다. 드보르작이 독일작곡가였던가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몇 번을 더 시도했지만, 결국 카라얀의 신세계는 먼지 더미 속으로 사라졌다. 가끔 옛날 향수가 떠올라 시도하지만, 금세 판은 내려졌다.
보헤미안 신세계
1962년 카를 안체를의 드보르작 신세계는 드보르작이 원했던 보헤미안 색채가 강하게 드러날 뿐 아니라 연주는 놀라움 그 자체다. 3악장의 목관을 들어보면 드보르작에 있어 체코필의 위대함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독특한 관악의 울림, 비엔나를 능가하는 현 합주는 왜 체코가 예전 최고의 악단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아쉬움이라면 랩으로 한풀 싸인 듯한 CD 음질이다. 다행히 나는 수프라폰 초반을 구해 고음질로 녹음해 듣고 있다. CD의 막과 같은 느낌은 추측건대 진공관 녹음이 주는 뭔가 독특한 공간 느낌과도 비슷하며 체코필 음향 자체의 특징인 듯하다. 수프라폰 녹음과 체코필 전반에 느껴지는 음이다. 안체를의 신세계는 탈리히의 연주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드보르작 신세계다. 탈리히의 연주는 모노이자 조금은 아쉬운 음질이다. 쿠벨릭과 베를린 필의 연주는 연주 자체는 뛰어나지만, 안체를이나 탈리히에 비할 바는 아니다.

엉뚱하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악기를 팔면 가장 돈이 많이 될 연주단체가 체코필이라니 체코 필은 결코 변방의 악단이 아니다.
내가 가장 즐기는 신세계는 단연 체코필/안체를 연주다. 수프라폰 골드 2종류 CD, 오르페오 CD, 엘피 재반, 엘피 유럽 초반, 엘피 체코 초반까지 샀으니 약간은 광적인 듯하다.

최근 오랜만에 체코필의 드보르작 전곡녹음이 데카에서 발매되었다. 이지 비욜르하벡(Jiří Bělohlávek)의 연주로 2014년 올해 완성되었다. 탈리히와 안체를의 전통을 뛰어넘을 만한 연주는 아니지만, 연주와 녹음 모두 좋다. 녹음 기술이 뛰어 남에도 옛날 연주와 같은 열정을 느끼기 어려운 것이 아쉽다.
또 다른 신세계
신세계 교향곡은 인기가 많은 만큼 좋은 연주도 많다. 아래는 이미 듣지 않은지 오랜 음반도 있지만,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그래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음반들이다.
-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2악장을 고르라면 베를린필/프릭차이의 연주.
- 베를린필/쿠벨릭의 연주는 모든 면에서 좋은 연주다. 하지만 독일적 느낌이 여전하고 보헤미안의 느낌이 약간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
- 케르테츠의 연주는 영국인의 지나침이 작용하였으며 데카 와이드밴드에 대한 군침도 무시하기 어려운 듯하다. 세련된 연주이지만, 색체감이 떨어진다.
- 음향적인 쾌감을 느끼고 싶다면 클리브랜드/도흐나니, 비엔나필/콘드라신
- 솔티의 연주 역시 음향적 쾌감이 있고 좋은 연주지만, 특별한 위치에 둘 정도는 아니다.
- 클리브랜드/조지 셀, 시카고/줄리니의 연주도 아주 좋다. 세련된 드보르작.
- 노이만의 연주는 보헤미안 느낌은 좋지만, 연주에서 조금 아쉽다.
프리츠 라이너와……..시카고필의 연주도 들어보시라……..
프리츠 라이너와 시카고의 드볼작 신세계!
대단했던 연주죠. 1957년 연주로서는 수준높은 음질, 빈틈없이 꽉 짜여진 박력있는 연주였다고 봅니다. 엄청난 연주이자, LP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연주죠.
그러나 이 음반은 저에게는 관심이 멀어진 연주입니다.
군대적인 절도와 조금 과하게 딱딱한 비트는 저에게는 마치 군악대 연주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며, 또한 실황과는 거리가 있는, 평면적이고 자연스럽지 않은 음향 등이 점차 그 음반을 멀리하게 하더군요. 아마도 엘피초반을 소유했다면 향수로 한 번씩 들을 것같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