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hez-de-Béarn → Navarrenx
시간: 8시간 20분(8:00-4:20)
고도: 211-78-200-120-259-127
길: 시골포장도로,구릉,비에 젖은 흙길
날씨: 종일 비, 추위
상태: 힘들다. 왼쪽 종아리 심한 통증 시작
좋은것: 블랑쥬리 지트에서의 아침
나쁜것:
걸은 길: 677km
남은 길: 56km
지트
잠을 거의 못잤다. 지트 주인이 어제 방문해 혼자서 괜찮냐고 물었을 때 혼자가 아니라 유령과 함께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농담을 했지만, 밤새 삐걱대는 소리가 거슬려 잠들기 어려웠다. 오래된 건물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여기서는 ‘나무가 일한다’고 표현한다. 오래된 건물에서는 오래된 나무와 나무 사이가 자리를 잡기 위해 삐걱되는 소리다. 유령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잠을 잘 수 없어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아침은 블랑쥬리에서 맛있는 빵으로
나 혼자의 아침을 위해 지트에 준비하기 보다는 블랑쥬리(빵집)에서 먹는 것이 낫다며 아침을 블랑쥬리에서 먹도록 했다. 이른 아침부터 짐을 챙겨둔 상태라 7시에 지트를 나섰다. 아직 한밤중처럼 깜깜하다. 차가 지나다니지만 인도가 없는 길이라 아주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블랑쥬리에 도착하자 사무실 테이블에는 이미 아침을 준비되어 있었다. 연세가 지긋한 한 분이 커피를 끓이며 아침을 먹도록 도와주신다. 모두가 바쁘다. 입구에서 보면 아주 작은 빵집에 불과하지만, 안은 규모가 상당하다. 직원도 많이 움직인다. 궁금해서 직원 수를 물었더니 8명이라 한다. 앞에 비해 직원도 많고 만드는 공간이 넓은 이유를 물었더니 학교와 결혼식 등 대량으로 판매되는 빵이 많다고 한다. 이해가 된다.
바게트 맛이 괜찮다. 먹을 수록 좋다로 바뀐다. 크라상이 있길래 나는 크라상보다는 쇼송뽐므를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지금은 쇼송뽐므가 없다며 뺑오쇼콜라를 준다. 뺑오쇼콜라가 아주 맛있다. 패스트리가 바싹하고 담백하다. 아마도 좋은 버터를 잘 사용한 듯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초콜릿이 고루 퍼져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초콜릿이 한쪽에 몰려있거나 느끼하거나 기름진 패스트리 맛이 나는 요즘 대부분의 뺑오쇼콜라와는 거리가 멀다. 초콜렛 맛도 아주 좋다. 지트 주인이자 블랑쥬리 오너인 셰프에게 물었더니 웃으며 초콜릿을 가져와 보여준다. 미셸클뤼젤 초콜릿이다. 놀랐다. 이런 시골에서 미셸클뤼젤을 사용하다니! 셰프는 빙그레 웃는다. 바게트도 담백하고 고소하며 질감이 좋아 물었더니 설명을 한다. 자체 밀가루를 열흘간 발효한 빵이라 글루텐이 잘 만들어져 질감도 좋고 맛있다고 설명한다. 다시 한 번 놀랐다. 이제는 찾기 힘든 옛날 빵 맛을 그대로 만들고 있으니 시골이라도 잘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소식에도 관심이 많아 한국의 파리바게트가 파리에 지점을 낸 소식에 대해서도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중에 쇼송오뽐므 대신 복숭아가 든 쇼송을 주었다. 모양 질감 모두 놀랍다. 배가 불러 빵과 쇼송을 가방에 넣었다. 점심으로 먹겠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출발
아침먹는 동안 시간이 거의 한 시간이 흘렀다. 8시 출발이다. 특이하게 형성된 마을 덕에 마을을 빠져나오며 헤메는 것 없이 GR65 길에 들어섰다. 계곡 등선을 따라 수킬로 도로의 양쪽으로 집이 형성된 마을이다. 길고 긴 마을을 빠져나오자 곧 바로 비포장 흙길이 시작된다. 산길인 셈이다. 특이하게 산길 역시 계속 일자로 이어진다. 그리고 숲 길이다. 숲 역시 일자로 이어지며 한 번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을 내려 예쁜 마을을 지나며 며칠 전이 할로윈데이라고 알려준다. 길가 피크닉 테이블에 호박 두 개가 귀엽게 놓여졌다. 마을을 지나며 걷는 일행을 만났다. 열 명이 넘는다. 하루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반가움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길에서 한번에 만난 가장 많은 수의 사람이라는 말도 빼지 않았다. 마을을 빠져나가자 차들이 빨리 다니고 차가 꽤 많은 도로 옆을 걸었다. 도로에 붙어있는 길은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지나거나 건너야 한다. 아슬한 곡예로 길을 건넜다. 순례길 도중 사망하는 85퍼센트는 도로 위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미라벨
위험한 도로를 지나 미라벨 마을을 향하며 문이 열린 카페를 기대했다. 날씨가 생각보다 궂고 추워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그러나 원하던 카페는 모두 문을 닫았고 남은 것은 좁은 인도뿐이었다. 마을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날씨 때문인지 호감을 느끼지 못한 채 마을을 벗어났다. 그리고 미라벨이 싫은 이유가 일어났다. 마을을 빠져나와 얼마를 걸은 후 갈림길이 나왔다. 길에서 옆으로 빠지는 경우는 대부분 오른쪽 혹은 왼쪽의 표시가 있지만, 애매하게 기울어져 있을 뿐 일자로만 표시되어 한참을 고민하다 꺽지 않고 그래도 길을 갔다. 한참을 가도 GR표시가 없다. 수킬로 표시없는 길도 있으니 계속 걸었지만, 강옆을 지나는 길 뿐이다. 하는 수 없이 왔던 먼 길을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새로 걷는 길에는 얼마 후 GR표시가 있다. 길이 멀고 힘들기에 조금만 옆으로 새도 고통스럽다. 미라벨이 싫어진다. 경치도 길도 나쁘지 않지만, 길가 밭의 무우도 먹음직스럽지만, 그래도 미라벨이 싫다.

날씨
지금 11월 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더위 때문에 고생을 했다. 오늘은 계속 비가 내린다. 기온도 많이 떨어졌다. 오늘은 그동안 쓸 일이 없었던 장갑이 필요하다. 오래전 가벼운 추위라며 무시했다가 손가락 동상에 걸려 수년 간 고생한 경험이 있어 날씨가 차고 손이 시리면 나에게 장갑은 필수다. 비가 오면 시골 길은 좀 엉망이 된다. 군데군데 물이 고여 지나기 힘들기도 하고 경사진 곳은 매우 미끄러워 아슬아슬 하다. 순례길에는 좋은 신발이 필수다. 대부분 비브람 바닥을 많이 신는다. 비속에 온갖 길을 걷다 보면 오후 늦게는 양말 끝이 살짝 젖은 듯한 느낌이다. 신발이 새는 것 같진 않지만, 발끝이 살짝 시려진다. 물인지 땀인지 때문인 듯하다. 건조될 틈없이 종일 걸으니 날이 차면 발이 시리다. 걷기는 힘들지만, 구릉이나 시야가 트인 곳을 지날 때면 경치가 좋아 이제는 즐긴다.
점심
점심은 먹다 남긴 샌드위치 10센티 남짓, 비트 샐러드, 셍몽 로제 와인이 전부다. 아침 불랑즈리에서 가져온 쇼송오뽐므는 이미 길을 가면서 먹었으며, 바게트 조각은 남아 있지만 함께 먹을 것이 없다. 점심때 쯤 발견한 나무 아래 놓인 피크닉 테이블과 의자는 많이 젖지 않아 점심을 먹기에 아주 좋았다. 아내가 강요하듯이 넣어준 쿠션이 이럴 때 유용하다. 샐러드는 포장이지만 맛있고 훌륭하다. 점심이 기쁜 이유는 샐러드 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샐러드를 즐긴다. 한국의 풀냄새 나는 서양 야채는 싫지만, 이곳 프랑스에서 본연의 맛이 잘 나는 샐러드는 너무나 좋다. 그리고 점심에 마시는 와인 한두 잔 역시 행복한 메뉴다. 눈앞에 펼쳐진 시골 경치는 내가 현재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후 길
능선 아래를 내려와 소브라드 수도원을 지난다. 수도원 카페는 1800년대부터 맥주를 만들었다는 간판만 있을 뿐 역시 문을 닫았다. 건너편 끌로에는 포도나무가 있을 것 같지만, 포도 대신 소가 풀을 뜯고 있다. 수도원을 지나고 다시 산을 오른다. 오르는 느낌은 산이지만, 오르면 마을이 나오는 높은 언덕이다. 마을과 고갯길을 지난다. 능선을 오르내리는 동안 비가 억수처럼 쏟아진다.
길이 멀다. 능선을 여럿 오르내렸지만, 여전히 오늘 목적지 나바랭스는 보이지 않는다. 긴 숲을 지난다. 마치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깊은 산속 도로같은 길을 지난다. 깨끗하고 잘 정리된 길의 느낌이다. 긴 내리막을 거쳐 메리텡을 지나고 마침내 나바랭스에 도착했다. 오늘은 지나치게 리듬보다 빨리 걷는 통에 다리의 통증이 심해졌다.

지트
어제부터 이브는 계속 앞서가며 연락이 온다. 이미 몇 시간 전에 자케 지트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지트에 갔지만, 아무도 없다. 주인과 통화했다. 잠만 42유로 드미팡시옹 63유로라고 한다. 나는 다시 이브에게 연락했다. 이브는 윗층에서 쉬고 있었다. 방의 시설을 보러 들어갔더니 마치 영화에 나오는 홍콩의 빈민가 느낌이다. 방도 여러 명이 사용한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리 방도 없다고 한다. 이브는 이상하다고 한다. 이브는 드미팡시옹에 38유로로 들었다고 한다. 어쨌던 나는 며칠간 인터넷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밀린 글도 있었기에 호텔로 갔다. 호텔은 45유로, 드미팡시옹은 67유로다. 오늘은 호텔로 숙소를 정했다.
별 2개의 호텔이지만, 리모델링으로 깨끗하다. 빨래건조기까지 방에 있어 밀린 빨래를 모두 끝냈다. 빨래 힘들다. 세면기에서 하는 손빨래는 정말 힘들다.
저녁
빨래 후 마을을 돌던 중 한 카페에서 이브를 만났다. 그리고 폴이라는 친구와 새로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폴은 그르노블 집에서 걸어서 지금까지 왔다고 한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다 수퍼가 열린 시간을 놓쳤다. 모두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잠시 밖에 나갔다 이브와 폴이라는 새로운 프랑스인을 만났다. 한참을 떠들다 저녁거리 사는 사간을 놓쳤다. 하는 수 없이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호텔 식당은 넓고 시설이 좋다. 드미팡시옹에 딸린 메뉴를 주문했다. 앙트레로 나온 바이욘 햄부터 예사롭지 않다. 내 평생 먹은 바이욘햄 중 가장 맛없다. 그나마 주문한 쥐랑송 섹이 있어 먹을 수 있었다. 메인으로는 댕드(터키)가 나왔다. 아래는 미셸린 레스토랑 흉내를 낸 라타투이가 깔려 있다. 역시 먹어본 야채 요리 중 가장 맛없다. 댕드와 소스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목이 막힐 정도로 댕드의 질감이 좋지 않다. 별도로 주문한 감자튀김이 아니었다면 완벽하게 슬픈 저녁이 될 뻔했다. 맛없는 음식과 먹는 와인은 취하게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침대에 눕는 순간 즉시 졸도상태로 빠지고 아침까지 잠은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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