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oue-Ithorots-Olhaïby → Ostabat-Asme
시간: 8시간 (8:10-4:10)
길: 시골포장도로,구릉,숲, 시냇물 길
날씨: 심한 소나기 한차례, 화창
상태: 아주 좋음
좋은것: 지겹지 않은 길, 바스크 경치, 맛있고 넉넉한 저녁
나쁜것: 점심 먹은 지트 에스카르고 주인
걸은 길: 713km
남은 길: 20km
아침
주인이 없는 지트라 아침은 커피 한 잔이다. 먹을 것은 어제 모두 먹어버려 오늘 아침과 점심은 굶는다. 오늘 도착할 지트까지 에피스리, 카페, 레스토랑 등 문을 연 곳이 없다고 한다. 그나마 아침에 따뜻한 커피 한 잔도 고맙다. 커피 한 잔 후 주인 없는 지트를 떠났다. 폴이 세 명분의 가격을 수표로 남겼다. 각자의 비용은 나중에 폴에게 현금으로 주면 된다.
무지개
이곳 지트의 이름처럼 경치가 좋다. Gite de Belle vue, ‘전망 좋은 지트’다. 아침 사진 몇 장을 찍는 동안 멀리서 무지개가 트기 시작한다. 색이 점차 짙어지고 커진다. 묘하게 흥분된다. 마당의 잔디는 흠뻑 젖어 걷기가 힘들지만,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가 사진을 찍는다. 아직 왼쪽에서 시작되고 반원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크기지만, 마음이 들뜬다. 아쉽게도 이내 옅어지고 작아졌지만, 무지개의 흔적이라도 발견한 것이 대단한 기쁨인 것처럼 여겨졌다. 동심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
바스크 길
오늘 길은 즐겁다. 끝없이 뻗어 고통스럽게 하는 길이 없다. 꼬불꼬불 굽이치는 길이 많아 지겹지 않다. 특히 피레네가 가까워 지면서 아름다운 바스크 지방 경치를 즐기며 걷는다. 오전은 비로 걷기가 힘들었지만, 오후에는 비가 적고 빛도 간간히 있었다.
오래전 혼자서 바스크 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지만, 바스크에 왔었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바스크가 아름답다. 피레네에 가까워 질수록 더 많은 양이 보인다. 단순한 경치보다는 양이 이곳저곳에 흩어진 경치가 더 매력적이다. 양젖으로 만드는 오소-이라티의 고장에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오소-이라티
정오 가까운 무렵 기대하지 않았던 광경이 펼쳐졌다. 앞서 가던 폴과 이브는 카메라를 꺼내기 바쁘다. 길을 가득메운 양떼가 올라오고 있다. 눈앞의 광경에 흥분된 나는 아이폰부터 꺼냈다. 동영상 모드로 돌리고 촬영을 시작했다. 바스크 베레를 쓴 젊은 목동은 양을 다른 초지로 이동시키는 중이었다. 길은 양 똥으로 가득하다. 양떼를 초지로 옮긴 목동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양은 모두 젖을 짜기 위한 양들이며 젖은 조합으로 보내 오소-이라티 치즈를 만든다고 한다. 동영상을 조금 일찍 중단하는 바람에 목동의 이야기를 충분히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치즈를 통해서도 느낀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오소-이라티를 모르는 파리 사람도 많았지만, 이제는 왠만한 사람도 아는 유명한 치즈가 되었다. 덕분에 오소-이라티 치즈는 돈이 되는 산업으로 발전하였고 생산이 대부분 산업화되며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이고 있다. 그래서 바스크 지역 사람은 오소-이라티보다는 작은 규모 생산자의 브르비(양젖) 치즈를 찾는다고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점심
라리바르-소르하푸루에 도착하자 지트 겸 카페인 에스카르고 지트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뭔가를 먹을 수 있다는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서 있어 나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안주인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곧이어 이브와 폴이 들어와 말을 건네자 안주인은 이상한 눈빛을 푼다. 그리고 지금 준비된 것은 없고 오믈렛 정도 가능하다고 한다. 아침도 먹지 않은 우리는 무엇이든 감사했다. 오믈렛 옆에는 쌀도 조금 있었다. 빵이 있고 와인이 있으니 축복받은 점심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 조각의 빵, 한 잔의 와인이 소중하다는 것이 몸 전체로 느낀다. 안주인의 나를 쳐다보는 이상한 눈빛만 아니었다면 완전한 축복이었을 듯한데 아쉽다. 이브는 안주인이 동양인을 보는 눈빛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지 프랑스인보다 프랑스를 더 잘 아는 한국인이라며 설명까지 한다. 시골을 다니며 가끔 겪는 이상한 눈빛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만, 가끔은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대부분은 호의적이지만, 간혹 적대적이고 해방된 노예처럼 본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밝게 웃으며 좋은 인사를 나누어도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동양인이 겪었을 식민지 시대의 고통이 지금까지 연장되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점심은 감사하다. 마을 사람들과 어디를 가기 위해 잠시 문을 연 덕에 운 좋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기꺼이 점심을 제공한 안주인에게 감사하다.
아름답고 정이 느껴지는 바스크 길
바스크는 정이 느껴진다. 말하지 않는 경치와 길조차도 정겹다. 아베이롱처럼 차가움을 느끼게 하는 지역도 있지만, 바스크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바스크는 길이 즐겁다.
마술같은 하얀 동네, 오스타바트-아스메
Ostabat-Asme. 프랑스인들도 ‘오스트바-아슴’으로 발음했지만, 실제는 ‘오스타바트-아스메’로 읽는다고 한다. 바스크 지역에 와서야 바스크 언어는 프랑스어 발음과 달리 모든 철자를 소리낸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지역에 대한 추억이 있는 이브는 오스타바트-아스메는 어린 시절 마술같은 마을이였다고 한다. 하얀색 집과 붉은색 볼네(덧창)의 마을이자, 세상의 많은 사람이 모이는 특별한 장소로 기억했다. 지금 자신이 그 중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지금은 피레네를 넘기 위해 생쟝피에드포르에서 모여 출발하지만, 옛날에는 순례자들이 오스타바트-아스메에 모여서 출발했고 한때는 이 작은 동네에 지트만 스무곳이 넘었다고 한다. 생쟝피에드포르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출발지가 바뀌었다고 한다.
지트
지트에 도착했다. 옛 영광을 보듯 지트의 규모가 크다. 지금까지 본 어느 지트보다 크다. 이곳도 이미 문을 닫고 내년에 문을 열지만, 이브가 어제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 후 우리 세 명을 위해 이 거대한 지트를 오늘 하루만 연 것이다. 더욱이 어제 추위에 떨었기에 특별히 부탁한 난방까지 틀려져 있었다.
안주인과 바깥주인 모두 인상이 좋다. 안주인은 난방을 했으니 문은 열지 말 것이며 빨래거리가 있으면 내놓으라 한다. 그렇게 하여 처음으로 손이 아닌 기계의 도움을 받아 빨래를 했다. 후하게도 빨래는 단돈 2유로를 요구했다. 그리고 손님이 두 명 더 있다. 우리 덕에 두 명이 더 구제된 것이다.
저녁
저녁이 조금 일찍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기분좋게 아페리티프가 나왔다. 아페리티프로 나온 상그리아 한 잔으로 스페인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잔을 들기를 권한 바깥주인은 순례자의 노래, 울트레이아를 시작했고 함께 불렀다. 모든 가사는 모르지만, 반복되는 구절은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이미 순례길에 익숙해진 것이다. 다른 한 곡을 부르는 동안 동영상 녹화를 했지만, 녹화 버턴이 제대로 눌러지지 않아 녹화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저녁이 시작되었다. 웃고 인사하고 소개하는 동안 수프가 나왔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당근과 감자뿐이지만, 국물에 단맛과 감칠맛이 있다. 국물이 궁금해 물었더니 많은 양파와 여러 야채를 넣고 우렸다고 한다. 건더기는 제거되어 맑에 보인 듯하다. 다들 서너번은 먹었다. 춥고 배고팠던 하루였기에 수프는 하루의 추위와 피로를 녹이는 마법같은 음식이다. 에스플레트 고춧가루를 뿌려 얼큰하게 만드니 한국식 국이 되었다.
수프가 비워지자 큰 쟁반에 오믈렛이 나왔다. 순간 모두 눈빛이 실망으로 변한다. 당황스럽다. 점심도 맛없는 오믈렛이었는데 저녁 메인까지 오믈렛이라는 것이 슬펐다. 그래도 먹어야하니 다들 열심히 먹어 쟁반을 비웠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쟁반이 나가고 악소아(Axoa)라는 바스크 지방 고유의 음식이 나왔다. 큰 그릇에 푸짐하다. 송아지 고기를 잘게 다져 양파, 마늘, 감자 등 야채와 함께 익힌 음식이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조금 전 실망의 눈은 환희로 바뀌었다. 모두의 눈빛이 환희라는 것은 말이 필요없다. 행복한 마음으로 먹고 또 먹었다. 그냥도 먹고 바스크 지역 AOP 고춧가루 에스플레트도 뿌려 먹는다. 에스플레트 고춧가루는 우리나라 고춧가루처럼 입자가 있도록 빻고 매운 맛도 상당하다. 에스플레트는 통통한 고추로 어제 텃밭에서 직접 따 먹었을 때는 딸꾹질이 날 정도로 매웠다. 에스플레트 고춧가루를 듬뿍뿌린 악소아는 만두 속같기도 하고 국물이 적은 맛있는 찌개같기도 하다. 고기의 비율이 높아 국물은 많지 않지만, 진국이다. 종일 굼주렸던 배를 충분히 채우고도 더 채워 모두 과식했다. 모두들 너무 잘 먹자 안주인은 다시 많이 퍼왔으며 모두 다 비웠으니 먹은 양은 엄청났다. 모두 종일 굼주린 배를 채우고 넘쳐 과식을 한 듯하다. 나 역시 과식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며 모두 과식했다며 한바탕 웃었다. 이미 배는 과하지만, 바스크 지역 특유의 가또 바스크가 디저트로 나오자 모두 즐겁게 비웠다. 프랄린같은 크림이 든 아주 약간 촉촉한 케익이다.
두 명의 콜로넬
오늘 저녁 자리에는 우리 일행 외 두 명이 더 있다. 한 명은 몽셍미셸에서부터 걸어왔으며 다른 한 친구는 바스크에 살고 있으며 친구를 위해 이틀 전 합류했다고 한다. 혼자 피레네를 넘지 못할까 봐 도와주려고 합류해 20일간 함께 걷는다고 한다. 물론 농담이라는 것을 모두 안다. 아주 친한 친구라는 것도 쉽게 느꼈다. 둘은 우리나라 육사에 해당하는 프랑스 군사학교 출신이며 한 명은 현역 대령 다른 한 명은 얼마 전 대령으로 전역했다고 한다. 주로 외국에서 많이 활동했으며 전역한 친구는 임무 수행 중 생긴 잦은 부상으로 더 복무가 힘들어 전역했다고 한다. 현역인 친구는 오래전 한국과의 교류 프로그램으로 한국군 부대를 포함해 비무장지대, 땅굴, 울진 원자력식설, 부산 등 많은 곳을 시찰했었다고 한다. 군인으로 대사관 근무 경력도 많은 재능있는 군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저녁 후, 아랍에서의 여러 일화 등 일반인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이어졌다.
바스크를 배우다
이곳에서 느끼는 바스크는 내가 알고 있던 바스크와 다르다. 내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만, 바스크에서 바스크를 새롭게 배우게 된다. 폭탄테러 등의 뉴스로 알려진 바스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스크 베레모가 그들의 모습 전부가 아니다. 바스크인은 그들과 소통할 때는 바스크어를 사용한다. 어릴 때부터 두 언어를 동시에 배우도록 한다. 스페인 바스크에서는 스페인어, 바스크어를, 프랑스 바스크에서는 프랑스어, 바스크어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운다.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코카서스 정도로 추정한다. 그렇지만, 바스크어와 유사한 언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독립에 관해 질문하자 스페인과 프랑스의 바스크인의 입장은 다르다고 한다. 프랑스에는 바스크 인구가 30만 정도로 많지도 않지만, 생활이 윤택한 편이기에 구태여 독립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본느 뉘
배고팠던 하루는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맛있고 풍족한 저녁으로 마무리되고 잠자리에 들었다. 행복한 저녁 후라 ‘Bonne Nuit’가 절로 나온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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