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을 떠나기 전 음악을 골라 아이폰에 넣었다. 시대 별로 분류해 듣고 싶은 음악을 넣었다. 산책하거나 산행에서 길을 걸으며 듣는 음악은 늘 특별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순례길에서의 음악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의 음악을 듣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느끼며 걷는 것이 음악보다 나을 때가 대부분이었으며,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길, 비포장 도로이더라도 자동차가 지날 수 있는 길이라면 위험하기에 음악을 듣지 않게된다. 음악으로 인해 위험을 안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너무 힘든 길이거나 비가 오면 이어폰을 끼거나 조작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리고 잠시 방심해, 순간 길을 놓쳐버리며 예정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걸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게 된다. 여러 이유로 예상과 달리 음악을 거의 듣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전혀 듣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무릎이 아파 힘든 걸음에서 브루노발터, 비엔나필 1951년 실황연주 3악장을 듣고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곧게 끝없이 펼쳐진 길이 지겨워 음악을 듣기도 했다. 이상한 것은 길과 어울리는 음악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잘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유럽의 한 복판에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음악이 많았다. 유럽 초기음악과 르네상스 음악이 자연과 잘 어울렸으며, 약간의 바로크 그리고 슈만과 멘델스존이 나름 어울렸던 것 같다. 현악기보다는 피아노가 더 좋았다.
낮에 걸을 때보다는 밤에 오히려 더 음악을 듣고 싶었다. 이어폰을 끼고 듣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꼈다. 잠자는 밤 동안 음악을 아주 낮게 틀어 듣기도 했지만, 한번은 누군가의 항의에 조심스러워져 음악을 듣기 어려웠다.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음악을 원하는 소리로 들을 수 있는 공간이 그리웠다.
순례길은 음악도 짐처럼 가벼워야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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