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Jean-Pied de Port → Paris
아침
마지막날 아침이다. 아침이라기보다는 새벽 1시 30분에 깨어나 글을 정리하고 줄곳 깨어 있었다. 5시경 다시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아 바깥 식당으로 다시 나갔다. 아침 5시 30분이 되자 해군 출신의 한 사람이 나와 짐을 챙긴다. 이어서 60대 나이의 벨기에인이 나와 아침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커피와 빵을 먹으며 함께 자리를 했다. 해군 출신은 프랑스에서 태어난 동양인 혼혈이며 몸이 아주 좋다. 짐이 거의 20킬로라 한다. 아마도 먹을 것만 5킬로 가까이 되는 듯하다. 7시가 되어 방에 불이 켜지고 나도 순례길을 벗어날 준비를 했다. 짐을 모두 챙겨 밖으로 나왔다. 지트에는 이미 수 십명이다. 테이블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인원은 채 스무명이 되지 않기에 먼저 자리에 앉은 사람이 먹고 난 후 다른 사람이 먹어야 한다. 다시 한 번 스페인으로 향하는 순례자의 수에 놀랐다.
아침 동이 트기 시작하자 빛이 좋아 마을을 다니며 사진도 찍고 다음 언젠가 다시 올 생쟝피에드포르를 카메라와 눈에 담았다. 파리로 향하는 차가 9시 30분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다. 마을 중심에 있고 인터넷이 되는 카페로 갔다. 아마도 첫 손님인 듯하다. 커피 한 잔과 아침의 여유를 즐겼다. 다른 날이라면 이미 출발해 땀을 흘리고 있겠지만, 순례길 위의 사람과 순례길을 벗어난 사람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고 있다.
파리로
아침 9:30분 파리로 가는 기차는 없다. 주말이라 공사 구간이 많아 버스를 두 번 갈아 탄 후에 닥스(Dax)에서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간다.
9:30 – 10:45 (Sainit-Jean-Pied de Port → Bayonne)
12:55 – 13:45 (Bayonne → Dax)
14:00 – 20:35 (Bayonne → Paris, Gare de Lyon)
다니엘, 순례길 10년
생쟝피에드포르 기차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벨기에인을 만났다. 날씨가 꽤 쌀쌀한데도 바지는 여전히 반바지다. 바지를 물었더니 긴 바지가 없다고 한다. 10년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순례길을 다니고 있으며 날씨가 추워지면 바지를 사서 입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버리는 식으로 짐을 줄인다고 한다. 어제 바지를 사러 갔었지만, 적당한 것이 없어 지금 반바지다. 이번에는 카미노 노르테(Camino Norte)를 걸을 예정이다. 나도 카미노 노르테에 관해선 많이 들었다. 예전에 일로 만난 스페인 사람들도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남부 안달루시아가 아니라 북쪽 대서양 해안이라고 여러번 강조하는 것을 들었다. 카미노 노르테는 많은 사람이 걷는 길이 아니기에 이 계절에는 문을 닫은 지트가 많아 잠자리를 걱정했더니 잠은 아무 곳에서나 자니 걱정없다고 한다. 더욱이 이번 출발지인 비아리츠에는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가 며칠간 쉬어가도록 권해 비아리츠에서 며칠을 그 친구와 보낸 후 카미노 노르테를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캄보에 내려 갈아 탈 생각이었지만, 바이욘이 비아리츠로 가기에 편리하다고 역무원에게 듣고서 바이욘으로 향하는 버스를 함께 탔다.
바스크의 수도, 바이욘
프랑스 바스크의 수도 바이욘에 내렸다. 바이욘에서 닥스로 가는 버스시간까지 두 시간 남짓이 있다. 다니엘은 바이욘에 들어가 도장을 하나 더 받자고 제안했다. 두 시간 동안 그냥 있기 보다는 당연 바이욘 시내로 들어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기에 함께 바이욘 시내로 들어갔다. 역에서 걸어 15분이면 충분했다. 내가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다니엘은 빠르고 편하게 걷는다. 나이는 60대지만, 10년간의 걸음 내공이 보인다. 바이욘 시내의 오피스 드 투리즘에 들러 간단한 정보를 얻은 후 시내에 우뚝 솟은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앞 카페에 앉아 잠시 쉬며 커피 한 잔을 나누었다. 10년을 여행하고 있는 순례자를 위해 커피 한 잔을 내는 것은 기쁨이다. 성당을 잠시 구경한 후 신부님께 도장 하나를 받았다. 이로써 나의 크레앙시알은 한 면이 가득찼다. 하나 비어진 공간에 바이욘 스탬프로 완성했다.
멀리서 장이 열린 것을 봤기에 장터로 갔다. 장터에서는 편히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다니엘과 인사 후 헤어졌다. 다니엘은 바이욘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비아리츠로 갈 예정이다. 헤어지면서도 가슴이 먹먹하다. 10년간 집에 들어간 적없이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지트가 집이고 처음 만나는 순례자가 가족일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먹먹하다.
바이욘 장에는 특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작은 생산자의 보잘 것없는 야채가 가장 인기있다. 작고 험투성이의 토마토와 채소를 판매하는 곳에 줄이 가장 길다. 이제 프랑스인들에게 진짜 소규모 바이오 농산품을 이해하고 거래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더욱이 가격이 아주 비싸다. 우리나라의 눈속임 친환경농산품과는 거리가 멀다. 친환경농산품을 구별할 줄 모르는 우리나라 소비자는 가짜에 비싼 돈을 지불한다. 진짜 친환경제품에 대해 비싼 돈을 주고 거래되는 시간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욘 햄, 브르비 치즈, 케익, 빵, 버섯, 음식 등 풍성하게 널렸지만, 아직은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어떤 제품도 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시장을 둘러보고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함이 아쉽지만, 아쉬움을 남기는 것도 여행의 한 부분이니 기꺼이 기쁘게 장터를 벗어날 수 있었다.
파리로
짧은 시간이지만, 바이욘 시내, 성당, 장터를 걸어서 구경하니 한두바퀴 도는 것에 시간이 넉넉했다. 이제 바이욘 역으로 돌아가 닥스행 버스를 탄다. 사람이 많았고 앞의 시내버스가 느리게 가는 바람에 닥스에는 늦게 도착했지만, 버스가 도착하고 사람이 탄 후에야 TGV는 출발했다. 버스도 기차의 일부이기에 예정된 승객이 버스에 내려 기차를 타야만 출발한다고 했다.
파리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글을 적고 있다. 오늘은 일등석 할인인 있어 이등석 97.8유로보다 3유로 비싼 100.8유로에 일등석을 탔다. 일등석은 3열이고 전원을 끼우는 콘센트까지 있어 편히 글을 적을 수 있었다.
순례길은
기대했던 뭔가의 느낌이 생쟝피에드포르에서는 없었다. 생쟝피에드포르에 도착하면 뭐든지간에 어떤식이든 느낌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생쟝피에드포르에서 가진 느낌이라곤 더 이상 걷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외엔 없었다. 새벽에 일찍 깨어나 보낸 긴 시간 동안에도 어떠한 느낌도 없었다. 그런데 기차에서 글을 적는 동안 놀랍게도 어떤 의도도 없이 단순히 글을 정리하는 동안 눈에서 뜨겁고 그치기않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달이 어제 하루의 일처럼 짧게 느껴진다. 짧은 시간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과 서로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도우려고 애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기쁨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아쉬움으로 헤어지는 곳이 순례길인 것 같다. 각박하고 서로를 해하려는 세상을 벗어나 위로와 아낌, 사랑을 느껴지는 곳이 순례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치 마약처럼 다시 찾게되는 것이 순례길인 듯하다. 지금은 지치고 힘들고 떠나지만, 다시 세상이라는 또 다른 여정에서 순례길의 육체적 힘듦과 고행이 세상의 격하고 무자비한 정신적 고통과 무자비함에 비하면 달콤한 고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 다시 순례길로 들어서고픈 강한 욕구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따뜻하고 편한 곳이 아닌 힘든 순례길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용서
순례길을 걷는 동안,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지난 시간 동안 나와 만나고 인연이 된 많은 사람들, 인연 그 자체가 된 동물들까지 떠올리며 용서를 빌기도 하고, 용서를 하려고 애쓰며 좋은 인연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십자가에 작은 돌 하나하나를 올리며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나와 연결된, 연결되었던 모든 인연에게 어떠한 앙금도 없고 없기를 바라며, 더 나은 곳에서 편하기를,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힘든 걸음걸음을 옮겼었다.
얼마나 많은 인연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려고 애썼는지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순례길을 걸어야한다는 알지 못할 의무감에 무작정 떠난 순례길이고 지금도 내가 무엇을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겠으며, 기껏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의 순례길이지만, 파리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이 글을 적고 있는 동안 눈물이 끊이지 않고 세차게 흐른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흐른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소리질러 울고 싶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많은 시간과 함께 나 자신과 나와 연결된 인연들에게 충분히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처럼 마음이 아픈 것일 것이다. 더는 이런 아픔의 인연과 시간이 안되길 바라지만, 다시 세상에 놓여졌을 때 내 모습, 나의 행동과 실천이 어떨지 모르겠다. 더는 아프지 않게 성실히 대하고, 후회스럽지 않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고 싶다.
– 추가 –
일기 또는 기록을 위해 적다보니 제 이야기만 적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분들과 함께 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도에 그만 걷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 잡힐 때마다 항상 발걸음이 뒤가 아닌 앞을 향하도록 밀어 주었습니다. 고맙다는 감사하다는 이상의 표현이 필요하네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글들을 단숨에 읽어내렸습니다. 9월에 르퓌로 가게 되는데, 읽으면서 두근두근대는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이 생기네요ㅎㅎ 좋은 글, 사진들 정말 감사합니다.
답글 감사합니다.
설렘은 많이 가지셔도 좋습니다. 두려움은 아주 약간만 가지세요.
순례길은 걷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최고의 기쁨과 행복을 줄 수도 있으나 마음이 편치 않다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런 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밝은 마음, 순수한 마음, 편견 없는 마음, 가슴을 비운다면 삶에서 최고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를 하실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프랑스어를 잘 하신다면 문제가 안되겠으나 만약 프랑스어를 모른다면 충분한 시간이 남았으니 공부하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