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아프리카 속담이다. 위 속담은 야생 동물이 난무한 아프리카 야생 환경에서 태어난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야생의 환경은 아니지만, 순례길을 걷는 동안 철저하게 이런 느낌을 가졌었기에 나에게 잘 와 닿는다. 이 속담은 순례길을 걷기 전에는 몰랐으며 며칠 전 배운 속담이다.
순례길 동안 체득했지만, 이 속담은 오히려 현재와 앞으로 살아가는 내내 나에게 적용해야 할 것 같으며, 모순적이게도 문명화되고 디지털화된 지금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바쁘게 움직이며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정작 놓치는 것은 더 멀리 가기 위해 필요한 휴식이고 여유라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효율을 원한다면 혼자서 빨리 달려 일등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쉬고 나누고 격려하며 더 멀리 더 넓은 곳을 보며 가는 것이 필요하다.
순례길 동안 키가 큰 젊은 독일인이 있었다. 어느 날 눈 인사만 나누고 휙 지나갔다. 큰 키에 걸음이 빨랐다. 우리 일행도 열심히 걸었다. 오후 늦게 그 독일인이 우리를 다시 지나쳤다. 웃으며 물었다. 어찌 된 것인지. 그는 길을 잘못 들어 두 시간 정도 다른 길을 걸었다고 했다. 며칠 후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늦은 시각 도착 후 샤워하고서 맥주를 한 잔 즐기고 마을 산책을 하는 동안 택시에서 내리는 그 독일인을 만났다. 역시 길을 잘못 들어 비싼 돈을 주고서 오늘 목적지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삶의 물리적 종착지는 ‘죽음’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삶에서 중요한 것은 종착지를 향해 더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더 느리게 가는 것이며 더 멀리 두는 것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보내고 누리는 시간을 ‘의미’있는 것으로 채우는 것이다. 삶은 속도나 숫자가 아니라 의미다. 의미있는 삶, 질(質) 높은 삶이다.
무조건 느리게 가는 것이 미덕은 아니다. 열심히 가야 한다. 더 나은 것을 찾으려면 더 열심히 가야 한다. 혼자일 때도 있지만, 함께일 때도 있어야 한다. 함께 가야 하는 대상이 반드시 친구이고 사람은 아니다. 함께 가야 할 대상은 사람이자 글/책이며, 주변이자 자연이다. 이들과 함께라면 삶의 궁극적인 목적 혹은 뭔가 모르지만, 더 나은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은 마라톤이 아니다. 경쟁도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더 빨리 아는 것, 더 빨리 더 많은 돈을 버는 것, 더 빨리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선행 학습으로 더 빨리 알고 성적이 더 좋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빠르지는 않더라도 적절한 시기에 더 많은 사고(思考)로 학습을 한 사람이라면 학교 성적은 떨어지더라도 더 많고 더 올바른 지식을 가질 것이다. 사고(思考)가 동반된 바르고 폭넓은 지식은 지혜와 함께 더 나은 삶으로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에겐 이것이 중요한 가치가 아닌 것 같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숫자와 이름이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대부분 시간을 거짓, 사기, 비리, 시기, 악의, 부도덕, 물리적 정신적 폭행 등과 같은 험한 것들로 채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나쁜 것들로 채운다. 더 나은 삶이란 ‘더 빨리/더 많이/나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이 더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질 높은 삶’의 의미를 모르기에 숫자/이름의 잣대를 댄다. 사는 지역, 아파트 평 수, 자동차 브랜드, 냉장고 리터, TV 크기, 직업, 직장 이름, 직업, 학교 성적/등수, 수석/차석, 출신 대학, 소위 명품이라는 라벨이 붙은 가방, 옷 등등.
모든 것을 다 가지면 최고의 행복이 손에 잡힐 것 같지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숫자이자 이름이기에 결코 행복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더 높은 수와 더 나은 이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원하는 것을 가지는 순간 알게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명품은 진짜 명품이 아닐 뿐 아니라 진정한 명품을 알게 되는 순간 다시 가난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언제까지 더 높은 숫자/이름을 위해 더 빨리 뛸 것인가?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인생은 종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높은 질의 삶을 원한다면 의미 있는 시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의미’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취하는’ 것이다. 숫자와 이름으로는 끝내 채울 수 없다. 지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세상에 내가 아는 것은 티끌보다 적지만, 세상에, 우주에 펼쳐진 지식은 끝이 없다. 마음이다. 작은 지식, 작은 숫자, 보잘것없는 이름, 느린 것을 즐길 때 더 높은 숫자, 더 나은 이름도 더 큰 의미로 취할 수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공간, 주변, 자연, 책, 놀이, 사람이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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