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변의 밭에서 비닐과 깡통 등 쓰레기를 주웠다. 아내는 경사가 심하니 하지 말기를 권했지만, 오래 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것이라 시작했다. 안개비가 내리는 상태라 오히려 쓰레기를 줍기에 나았다. 휴지, 컵, 맥주 캔, 음료 캔, 찢겨진 과자 비닐, 밭에 까는 비닐 조각, 등 모든 종류의 쓰레기가 널렸다. 심한 경사라 아래에서 줍고 위에서 줍는 것을 번복했다. 시골이 좋아 놀러오면서 고성방가와 쓰레기 버리는 것은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쓰레기를 줍는 동안 혈압이 상승했다. 내 머릿속은 ‘미개’라는 단어 대신 다른 단어가 서서히 차기 시작했다.
Mental zombie!
삼성에서 일하는 일부 외국인의 눈에 삼성직원은 마치 ‘좀비’같다는 뉴스를 봤었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이니 삼성직원을 ‘좀비’로 표현한 것은 꽤 적절해 보인다. 반드시 야근이 필요한 상황이 아님에도 업무와 관련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을 외국인 눈에는 사고하지 못하는 인간, 즉 좀비로 보였던 것 같다.
시골에서 자연을 만끽하고 싶지만, 눈을 편하게 돌릴 곳이 많지 않다. 구석구석 공무원이 만들어 놓은 흉한 설치물, 농민이 만든 오염과 쓰레기, 그리고 관광객이 함부로 버린 담배꽁초, 쓰레기로 차있다. 제대로 된 깊은 사고도 없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자신을 위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 ‘mental zombie’가 널렸다. 내가 살고 나의 후손이 살 이 땅에 생각없는 판단, 순간과 나만의 편함을 위해 자연을 망치는 mental zombie가 많다.
“한국 해안, 바다, 미세플라스틱 오염 최고”…㎢당 입자 55만개
위 뉴스를 보면 슬프지만, 댓글처럼 어부, 농부만 비난할 일이 아니다. 더욱 슬픈 것은 쓰레기를 줍는 동안 내가 느끼는 것은 비난 받아야 할 대상이 우리 모두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일부는 불법, 탈법, 비윤리 등의 행위에 대해 생존,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란 단어로 합리화하고 비열한 행동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행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부, 명예, 순위를 얻은 사람/집단을 부러워하기도 하며 심지어 칭찬하는 사람까지 있다. 이러한 생각의 확산은 우리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mental zombie 집단으로 변하는 것과 다름 없다. 전체와 타인을 고려/배려하지 않는 자신을 위한 무조건적인 행위는 ‘mental zombie’의 행동이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죽지 않기 위해 감염되지 않은 사람을 뜯어 먹으려는 좀비의 행동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내가 살 수 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간절히 원하기에 희망이 미약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는 mental zombie 집단으로 향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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