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키 스즈키(Massaki Suzuki)의 바흐는 기분좋은 바흐다. 노래는 대체로 밝고 합창은 아름답다. 음질까지 좋으니 늘 기분좋게 들을 수 있어 좋다. 무겁고 어두운 바흐를 피해 밝고 가벼운 바흐가 당길 때는 참 좋다.
기분 좋은 바흐를 벗어나 모차르트 레퀘엠을 들었다.
가볍다. 너무 가볍다.
울림이 거의 없는 팀파니는 오디오적으로 좋게 들릴 수 있을지 모르나 마음은 울리질 못한다. 합창은 지나치게 분절(分節)된다. 지나치게 밝다. 레퀘엠이라 반드시 어둡고 무거워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즈키의 밝음은 음악이 영혼에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
스즈키의 레퀘엠을 들는 동안 계속 칼 뵘의 레퀘엠이 떠오른다. 음 하나하나 영혼의 깊은 곳을 누르는 칼 봄의 레퀘엠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바이올린 현 하나까지 그나마 남아있는, 상처받지 않은 영혼을 베어버리는 듯한 칼 뵘의 연주와는 너무나 다르다.
깊은 상처 후 죽은이와 산이 모두에게 위안이 되는 음악이 레퀘엠이 아닐지.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