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의 ‘베버’는 클래식 시대의 작곡가 ‘베버’가 연상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ütz)’로 잘 알려진 작곡가 ‘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는 모차르트가 머문 만하임 하숙집 안주인 세칠리아 베버(Cecilia Weber)의 조카입니다. 남편 프리돌린 베버(Fridolin Weber)의 이복형제 아들입니다.
아버지 프리돌린은 더블베이스 연주자였으며 악보카피스트이기도 했습니다. 결혼 초기는 Zell im Wiesental에 머물렀지만, 넉넉치 않은 수입때문에 아이들이 어릴 때, 부인 세칠리아는 고향이자 친정인 만하임으로 옮겨 하숙집을 운영합니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딸이 넷 있었습니다. Josepha, Aloysia, Constanze, Sophie 순입니다. 모차르트가 이들 딸을 처음 만났을 때 나이는 19, 16, 15, 14였습니다. 딸은 모두 성악 교육을 받았으며 첫째 Josepha와 둘째 Aloysia는 음악적으로 성공했으며 모차르트의 많은 곡을 초연했으며 모차르트는 이들을 위해 곡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모차르트는 만하임에서 좋은 일을 구하지 못하고 파리, 비엔나 등 여러 도시를 떠돕니다. 1781년 찰츠부르크에서 알로이지아를 다시 만났을 때 알로이지아는 결혼하고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알로이지아의 남편, 조제프 랑거(Joseph Lange)는 배우이자 아마추어 화가였으며 경제적으로 부유했습니다. 랑거는 일시불 900플로린과 매년 700플로린을 알로이지아 어머니에게 주는 조건으로 결혼합니다. 당시 알로이지아 아버지의 연봉이 600플로린이었다고 합니다.
불편한 관계로 만난 모차르트는 “Leck mir das Mensch im Arsch,…”라는 노래로 심정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의미는 영어로 옮기면 ‘Kiss my ass’ 정도일 듯합니다.

이처럼 알로이시와는 처제, 랑거와는 매제가 됩니다. 모차르트가 메이슨 멤버인 것은 잘 알려져 있죠. 랑거도 메이슨 멤버였으며 서로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는 35세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이후 부인인 콘스탄체는 50년 가까이 더 삽니다. 남편이 떠난 후 부인은 경제적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합니다. 남편의 유작들을 잘 정리하고 세상에 알리며 경제적 어려움도 벗어낫을 뿐 아니라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을 세상과 나눌 수 있는 틀을 마련했습니다.
모짜르트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찰츠부르크를 방문해 나이가 든 모짜르트 프리마돈나, 알로이지아를 만나자 궁금한 김에 질문했습니다.
“오래 전 당신은 왜 모짜르트에게 퇴짜를 놓았습니까?
– 당시 저는 모자르트의 성격과 재능을 인정하지 못했었습니다.”
가수 조수미 씨가 즐겨 불렀던 유명한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이 부르는 노래, ‘Der Hölle Rache (Königin der Nacht)’는 언니 조제파를 위한 곡입니다.
알로이시아를 위해 작곡한 KV 316, ‘Popoli di Tessaglia… Io non chiedo, eterni dei’는 middle C에서 G 2옥타브 반까지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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