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철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냥이라는 것 자체가 일반인의 관심과 동떨어져 있지만, 시골은 사냥이 마냥 남의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어제 이웃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멧돼지를 잡았으니 구경오라 합니다. 마당엔 작은 멧돼지가 한 마리가 눕혀져 있었습니다. 20일부터 시작된 멧돼지 사냥을 위해 민박에 머무는 사냥군들이 잡아온 멧돼지였습니다.
크기가 자그마한 것이 아마도 올해 태어난 새끼인 듯합니다. 프랑스 미식가들이 게임(사냥고기) 중 최고는 봄에 태어나 그해 11/12월에 잡힌 야생 멧돼지라며 입을 모으는 것처럼 저 역시 고기의 질기기와 지나치지 않은 맛, 요리의 관점에서 다양한 수용성 등은 어떤 게임보다 낫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조심스레 일부를 살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뒷다리 두쪽은 이장님께, 그리고 나머지의 반 마리를 샀습니다. 그날 저녁은 김치찌개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음날 오후, 다시 연락왔습니다. 오늘 멧돼지는 거대합니다.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거대한 크기입니다. 무게를 물었더니 300근 가량이랍니다. 300근이라면 600그램 곱하기 300. 180킬로 정도입니다. 실제로 볼 때 크기가 얼마나 엄청난지 머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됩니다. 사냥꾼들은 나이는 10살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해체 작업을 시작하고 쓸개를 꺼냈더니 쓸개 역시 제가 본 중 가장 큽니다. 너무나 큰 쓸개를 보니 가격이 궁금해졌습니다. 호기심에 가격을 물었더니 기본 150만 원이라네요. 가격은 100근당 50만원 정도랍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임자를 제대로 만나면 200 이상 받는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몸에 좋은 것보단 맛있는 것에 관심이 더 있다보니 쓸개는 늘 관심 밖이었습니다. 매년 멧돼지를 살 때 가능하면 쓸개를 빼고 사거나, 쓸개가 포함되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습니다.
사냥꾼들은 해체 작업을 하는 동안 선호하는 부위가 있으면 말하라 합니다. 함께 구워먹자고 제안합니다. 멧돼지의 상태가 너무 좋아 흔쾌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불을 지피기 시작했습니다.
참나무를 자르고 불을 지폈습니다. 고기는 안심 등 다양한 부위가 준비되었습니다. 와인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없는 상태라 저는 막걸리와 함께 마셨습니다. 사냥꾼들은 역시나 소주입니다. 내장 목심 삼겹살까지 다양한 부위를 맛봤습니다. 조직, 질기기, 향, 맛 모두 참 다릅니다. 이것 저것 먹다보니 취기가 살짝 일기 시작했습니다. 날은 이미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사냥꾼 한 분이 저에게 소주를 권합니다. 소주를 마시고 싶진 않았지만, Que sera sera, 막걸리 마시던 종이 잔에 기분좋게 받고서는 바로 마셨습니다.
그런데……!!!
씁니다!
그냥 소주가 아닙니다. 잔을 들여다보니 색이 노랗습니다.
술의 정체를 물었더니 방금 그 쓸개라고 합니다. 마시기 어려운 맛이 아니라 또 마시고 싶은 맛입니다. 쓰지만, 아주 맛있는 쓴맛입니다. 요즘 소주처럼 느끼하거나 역한 향은 사라지고 적당한 알코올과 쓴맛이 어울려 아주 맛있습니다. 맛있는 쓴맛에 쓸개라는 것도 잊고 소주를 꽤 많이 마셨습니다.
그리하여 난생 처음 쓸개, 쓸개주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마실 일은 없겠지만, 다음에도 권한다면 기꺼이 마실 것 같습니다.
– 멧돼지 사진을 올리고 싶지만, 혐오감이 들 수 있어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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