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쇼팽콩쿠르에서 1등 상을 수상한 조 성진이 화제다. 조 성진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많지만, 21세의 젊은 조 성진만큼 더 나은 콩쿠르에서 더 나은 성적을 거둔 피아니스트는 없었다. 중요한 콩쿠르의 수상자를 떠올리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2등 상을 수상한 정 명훈 지휘자와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백 건우 씨가 떠오른다. 그런데 오늘 이상한 글을 보았다.
알려진 백 건우 씨의 경력
- 1946 서울 출생
- 1967 나움버그 콩쿠르 우승
- 1969 부조니 콩쿠르 우승
- 1970 줄리어드 음악학교 대학원
- 1982 프란츠 리스트 훈장
뉴욕 한인기자의 취재 내용
- 서울 출생
- 나움버그 우승은 졸라 숄리스(Zola Shaulis)와 공동 우승이며 상금이 5,000달러니 중요한 콩쿠르는 아닌 듯하다.
- 부조니 콩쿠르에서는 Ursula Oppens가 1등 상을 수상했으며 백 건우 씨는 4위로 추정.
- 줄리어드는 수학 중간에 그만 둔 것으로 공식 확인되었다.
- 프란츠 리스트 훈장은 단체가 불분명하다. Franz Liszt competition은 아니며, 추정할 수 있는 상은 American Franz Liszt Award가 있다. 설립은 1964년이지만, 수상은 1984년 부터 시작되었다.
무척 씁쓸했다. 그래서 백 건우 씨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프랑스어로 적혀 있으며 수상 경력은 부조니 콩쿠르 금상으로 적혀있다. (금상은 등수 외에 수여하는 특별 상인 듯하다.) 그 외 다른 내용은 적혀있지않다. 아마도 거짓에 대한 엄한 프랑스인의 특성을 알기에 적어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은 기재하지 않은 듯하다.
기자의 취재 수첩 중 상당한 충격은 부인 윤 정희 씨의 태도였다. 백 건우 씨의 한 기자회견 중 줄리어드를 졸업했는지 물었을 때 윤 정희 씨는 ‘Merde’라는 욕을 했으며 이어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의 소속을 묻고서 협박에 상당하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윤 정희 씨의 인격이 그 정도일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을 했기에 기자의 글이 사실이라면 아주 충격적인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백 건우 씨의 연주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구입한 백 건우 씨의 음반은 낙소스에서 나온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2장이 전부다. 프랑스 디아파종에서 ‘디아파종 도르’를 주었기에 호기심에 샀다. 나는 낙소스 음반을 좋아한다. 값도 저렴하지만, 세련된 연주에 지칠 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는 연주가 많은 낙소스 음반이 좋은 위안이자 대안이다. 요즘은 낙소스가 성장하여 거의 메이저에 가까워지면서 세련된 연주가 많아졌지만, 예전엔 표지만큼이나 지금처럼 세련되지 않은 연주가 많았다.
프로코피에프 음반의 성공 이후 백 건우 씨의 성공은 놀라웠다. 백 건우 씨가 알려지면서 여러 친구들이 백 건우 씨의 신보 음반을 나에게 건냈다. 나의 취향과 맞지 않았지만, 꾸준히 성공하는 모습이 좋아 백 건우 씨 연주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나의 무관심을 밝히진 않았다. 연주가는 사랑을 받는 애호가가 있으면 좋은 것이고 나 아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니 더욱 좋았다. 다른 이들이 좋아한다고 내가 구태여 좋아하는 흐름에 같이 갈 이유는 없었기에 백 건우 씨는 늘 나에겐 이방인이었다.
나는 백 건우 씨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만들었다고 믿진 않는다. 기자나 타인들이 만든 경력일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학교, 수상 경력이 중요한 우리나라 사람의 집착이 만든 것이라 믿고 싶다.
이번 쇼팽 콩쿠르에서 1등 상을 수상한 조 성진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특별상이 없다는 것은 비록 1등이지만, 심사위원들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연주는 아니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조 성진에게 손을 들어준 심사위원은 5명이지만, Hamelin에게 손을 들어준 심사위원도 4명이었다. 또한 조 성진이 1등이지만, 상금 총액에서는 2등 수상자 Hamelin에 미치지 못했다. 조 성진은 이번 콩쿠르에서 나무나 잘 했기에 – 1등이라는 상이 지금까지의 모든 쇼팽 연주를 능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수능을 1등으로 끝낸 것이 아니기를 바라게 된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할 것이다.
백 건우 씨가 자신에 대한 경력이 국내에서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정정하지 않았다면 – 이미 알고 있다는 정황이 꽤 많은 듯하다 – 분명 잘못이다. 전 세계 클래식 시장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많은 뉴스 내용이 사실이라면 – 특히 콘서트가 아닌 음반 – 한국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일 것이며 우리나라 연주자는 더욱 클래식 무대의 중심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럴수록 상도 중요하지만, 상이 아닌 연주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다.
1969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1등 상을 수상한 Ursula Opens 씨보다, 4등 Kun-Woo Paik 이름은 세상의 무대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또한 꾸준히 연주 활동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백 건우 씨는 충분히 존경받아야 할 것이다. ‘피아니스트 백 건우’는 피아니스트로서 이미 대단한 위치에 있으며 한국만이 아닌 세상의 많은 클래식 애호가에게 사랑받고 있는 현실에 학교와 경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언젠가는 – 세상이 왜곡시켰을 –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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