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동안 야생멧돼지를 구하려 무척 애를 썼지만 구할 수 없었다. 야생멧돼지는 구경조차 어려웠던 존재였지만, 시골에서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매년 겨울이면 주변으로 수렵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직접 사냥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을 통해 구할 수 있다.
구할 수 있다지만, 사실 일반인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야생고기다. 야생멧돼지가 앞에 놓여 있더라도 곧 바로 음식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위별로 손질하고 장만하는 곳을 찾지 못하면 직접 모든 작업을 해야한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도 야생 고기는 시골 사람,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둔 부자, 혹은 관심있는 미식가가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야생고기는 영어로 Game, 불어로 지비에(Gibier)이라 부른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지비에’라는 불어 단어를 알 것이다. 와인의 중요한 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90년대만 하더라도 프랑스 파리에는 야생고기를 전문으로 파는 상점이 꽤 있었지만, 야생고기가 귀해지면서 점차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는 거래 자체가 불법이라 서울에서는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구한다 하더라도 멧돼지를 손질할 사람,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요리사를 찾기 쉽지 않기에 야생멧돼지를 맛있게 먹기란 진정 어려운 음식이다. 더욱이 별 다른 조리법이 없다면 야생의 강한 향과 맛에 야생멧돼지를 즐기기도 전에 질릴 수 있다. 정말 어려운 음식이 야생 고기다. 아내 역시 멧돼지 손질하는 일이 고된 노동이라 내키지 않아 하지만, 워낙 내가 좋아하기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시골에 있는 동안 적잖게 야생멧돼지를 경험했다. 야생멧돼지가 우리 앞에 있을 때는 한마리 통채다. 일부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야생멧돼지 한 마리가 앞에 놓인 것을 실제로 보면 난감함이 보통 아니다. 해체하고 손질해야만 식재로 사용할 수 있다.
부위별 손질이 끝나도 내장은 고민해야 한다. 간, 심장, 허파는 따로 분리하면 되지만, 창자와 위(오소리 감투)가 문제다. 내장은 구이나 찌게에 사용할 수 있으며, 순대나 소세지를 만드는 케이스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내장 속을 비우고 장만하는 것은 상상만해도 그 어려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시지(살라미,소시송)로 만들어 곰팡이를 잘 피우면 정말 맛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어떤 소시지보다 못잖다. 잘 만든 야생멧돼지 소시지는 맛이 너무 좋아 가장 완벽한 오르가닉 소시지라는 사실은 잊는다.
그러기에 내장의 역함을 참아가며 장만할 것인지 포기하고 버릴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야생멧돼지를 먹는 일반적인 방법
시골에서 야생멧돼지는 거의 수육으로 먹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수육이 가장 맛있다 한다. 내가 경험한 수육은 돼지머리를 제외한다면 가장 맛없는 방식이었다. 수육은 너무 단순해 일부 부위를 제외하고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모든 부위를 수육으로 먹을 수는 없다. 멧돼지를 제대로 즐긴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 사람이 있었다. 그 분은 겨울 동안 멧돼지를 창고에 걸어두고 숙성시켜가며 조금씩 필요한 만큼 잘라 먹는다고 했다.
야생멧돼지는 구워도 맛있지만, 너무 질긴 부위가 많아 나이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구울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김치찌게에 넣는 것을 좋아한다. 야생멧돼지 고기를 김치찌개에 사용하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고 맛있다. 설탕은 음식 본연의 맛을 죽이고 맛이 떨어지게 만들기에 평소에도 사용하지 않지만, 특히 야생고기에는 절대 금물이다. 이렇게 좋은 재료는 다른 첨가물로 맛을 떨어뜨릴 이유가 없다. 적절한 향신료만 잘 사용하면 된다. 정말 달다. 신기할 정도로 김치찌개의 단맛이 좋다. 세상 어느 감미료도 이런 단맛은 만들지 못한다.
수육, 구이, 국, 찌개가 아마도 대표적인 요리법인 듯하다.
머릿고기는 수유과 편육, 국밥용 국 등으로 하면 아주아주 맛있다.
등뼈는 감자탕으로 만들어 찌개나 국으로 한다.
머릿고기든 감자탕이든 겨울철 무우청이나 배춧잎을 넣어 먹으면 천상의 맛이다. 시래기가 아니라 신선한 상태로 넣어도 맛있다.

야생멧돼지를 즐기는 좀 더 다양한 방법들
야생고기는 계절 음식으로 보는 것이 낫다. 오리, 거위, 사슴, 멧돼지 등 대부분의 사냥철은 늦가을과 겨울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겨울철에 즐길 수 있는 요리법이 좋지 않을까.

특별한 구이
구이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어린 멧돼지다. 어리다고 하지만, 실은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돼지보다 나이가 많다. 많은 프랑스 미식가들도 그해 태어나 12월에 잡힌 야생멧돼지가 최고라고 한다. 동의한다. 무엇보다 어린 야생멧돼지는 질기기에 있어서 가장 먹기가 좋다. 지나치게 질기지도 않고 씹는 느낌도 좋다. 향도 지나치게 강하지 않다. 나이든 멧돼지에 비해 야생의 향이 지나치지 않아 받아들이기 쉽다.
구이로 가장 적합한 어린 돼지 부위는 안심(로모), 그리고 삼겹살이 포함된 갈비다. 안심은 부드럽고 향이 단순하다. 갈비는 향과 질감이 단조롭지 않아 좋다. 모양은 어린 양고기 램와 비슷하며 더 길다. 6개월 정도 키워 100킬로 이상으로 만든 일반 돼지에는 삼겹살이 많이 형성되어 있지만, 6-8개월 자란 50킬로 이하의 야생멧돼지에는 삼겹살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정도로 기름이 적고 두께가 얇다. 어린 멧돼지의 안심과 갈비는 두텁지 않아 숯불에 굽기 적당하다.
크고 나이가 어느 정도 찬 야생멧돼지는 삼겹살과 목살이 구이로 좋다. 기름이 적당히 있는 덕에 심하게 질기지 않다. 특히 기름의 고소함이 매우 뛰어나다.
나이가 아주 많은 멧돼지는 삼겹살 정도가 구이로 좋다.

하몽
돼지 뒷다리를 이용한다. 햄과 하몽은 같은 말이다.
돼지 뒷다리를 영어로는 Ham, 스페인어로는 Hamon(하몬), 불어로는 쟝봉(Jambon), 이탈리아어로는 프로슈토(Prosciutto)라 부른다. 모두 햄이나 나라와 지역에 따라 종자와 먹이가 달라 맛이 약간씩 차이가 난다. 의미는 같더라도 고유의 서로 다른 특징을 포함한다.
국내 야생멧돼지 뒷다리로 만든 햄을 나는 하몽이라 부른다. 야생멧돼지의 털색이 스페인의 갈색(검정) 돼지와 가깝고 특히 도토리(베이요타)를 많이 먹어 단맛과 떫은 맛이 스페인 하몽 베이요타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잘 선택하고 잘 숙성시킨 야생멧돼지 뒷다리의 맛은 스페인 최고의 하부고(Jabugo) 하몽에 못지 않다.

살라미, 초리쏘, 소시송
돼지를 사용하고 남는 짜투리 고기를 이용한다. 소시지, 살라미, 소시송, 초리쏘 모두 햄처럼 같은 말이다.
소시지는 영어, 살라미는 이탈리아어, 소시송은 불어, 초리쏘는 스페인어다. 그런데 만들어 놓고 보면 맛은 프랑스 소시송에 가깝다. 주로 프랑스산 소금과 향신료를 이용해서 그러리라 추측한다.
모두 손으로 만들려면 상당히 많은 수고가 필요하고 어렵지만, 매달아 둔 소시송에 하얀 곰팡이가 피기 시작하면 마음은 밝아지고 입에는 침이 고인다. 먹기 시작하면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해야 한다.
프랑스에 여행을 하면 치즈와 함께 소시송을 빠뜨리지 않고 사다 날랐지만, 야생멧돼지로 직접 소시송을 만들어 먹은 이후로는 소시송, 살라미, 초리쏘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다.


파테, 테린느
파테와 테린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이며 생선, 육고기, 야채 등을 시용해 만드는 음식이다.
육고기는 주로 사슴, 오리, 거위, 멧돼지와 같은 야생 고기를 이용했다.
파테와 테린은 거의 같은 음식이며 프랑스에서도 둘을 구분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파테는 고소한 과자와 같은 프랑스 전형의 과자반죽으로 둘러싼 음식이라는 것이 다르다.
멧돼지 간이 사용되며 자투리 고기를 이용할 수 있다.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오랫동안 구워 주로 차게 먹는다. 구운 날부터 5일 정도는 지나면 더 맛있다.

굴라슈
소시송이나 테린 모두 꽤 많은 양의 기름이 필요하다. 야생멧돼지에는 기름이 생각보다 적기 때문에 이것저것 만들고 난 후 팍팍하고 질긴 살코기만 남는 경우가 있다. 특히 나이 들고 질긴 멧돼지는 이런 부위가 꽤 나온다. 이런 부위는 굴라슈로 만들면 좋다. 굴라슈에 들어가는 맥주, 야채, 향신료가 질긴 고기와 어울려 특별한 맛을 만든다. 오래 끓여도 고기가 풀리지 않고 쫄깃한 질감으로 이어지며 맛과 향이 진해서 좋다.
야생멧돼지는
한식, 양식 등 다양하게 요리를 하다보면 만드는 아내가 힘드는 것에 미안하지만, 먹는 사람에겐 즐거움 그 자체다. 어디에서도 쉽게 먹을 수 없는 맛있는 음식을 주변과 함께 나누고 기뻐할 수 있는 좋은 음식 재료다. 한식이 되었던 서양식이 되었던 최고의 맛으로 요리할 수 있는 식재료가 야생멧돼지다.
야생고기에 대한 바람이 있다. 현재 야생고기의 거래는 불법이지만, 수렵은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수렵한 고기를 허비하거나 불법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방관하기 보다는 오히려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편이 낫다. 부작용 걱정으로 평가를 미룬다면 너무 편한 행정일 것이다. 좋은 먹거리 찾기가 쉽지 않은 국내 상황에 야생고기의 거래가 합법화된다면 미식이나 건강한 먹거리란 관점에서 자극적인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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