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치찌개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우선적으로는 우리말, 우리음식이니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철자가 좀 우습죠? ‘찌’의 공식적인 표기는 ‘지옷’이 둘이니 ‘j’를 번복해 ‘jj’로 표기합니다. 저의 표현이 아니라 정부에서 ‘공인’하는 권장표기법이랍니다. 그러나 모든 외국인에게 동일하게 우리식 표현만을 사용하기에는 현실에서는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이해할 수 있는 순수한 영어식 표현이 필요합니다. 특히 다양한 문화를 접하지 못한 외국인에겐 더욱 부가적인 영어식 표현이 필요할 것입니다.
‘김치 스튜!’
어떤가요? 꽤 그럴 듯하죠? 정부 산하 ‘한국관광공사’가 권장하는 표기입니다. 하지만 서양 음식에 대해 꽤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표현이 이상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김치찌개는 ‘stew’식 요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a dish of meat and vegetables cooked slowly in liquid in a closed dish or pan
그릇이나 팬에 국물과 함께 고기와 야채를 서서히 익히는 음식
스튜는 고기와 야채에 물을 넣고 그릇이나 팬에서 천천히 익히는 음식’입니다. 얼핏보면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서양음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김치찌개는 스튜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스튜는 전형적으로 질긴 음식을 익히거나 낮은 온도에서 익히는 음식입니다. 이런 조리법은 질긴 고기를 연하게 만들기도 하며 육수가 우러나고 어울리도록 해 음식의 맛이 섞이도록 하는 조리법입니다.
김치찌개는 서서히 익히거나 졸여 만드는 음식이 아닙니다. 고기와 야채를 넣고 강한 불에 빨리 익히는 음식입니다. 고기와 야채에 물이 들어가는 음식의 범주에는 ‘stew’ 외에도 ‘soup’이 있습니다.
: a liquid dish, typically savoury and made by boiling meat, fish, or vegetables etc. in stock or water
국물이 있는 음식이다. 설탕보다는 소금과 양념을 넣고 만드는 전형적인 음식으로써 고기, 생선, 야채에 육수나 물을 넣고 끓여 만드는 음식이다.
위 정의들을 보면 김찌찌개는 ‘스튜’보다는 분명 ‘수프’입니다. 그리고 음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분명 수프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음식이자 대표음식인 김치찌개가 어쩌다 영어에서 엉뚱한 요리법의 음식이 되어버린 걸까요? 제가 보는 시각입니다.
이 표현은 영어보다 우리 말이 앞선 전형적인 ‘pidgin English(콩글리쉬)’라 봅니다. 영어를 영어로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 아니라 우리말이 앞선 번역입니다. 우리나라의 음식이니 우리 입장에서 우리식으로 번역했습니다. 국물이 많으면 ‘soup’, 국물이 적으면 ‘stew’로 일괄 번역한 경우입니다. 서양에선 결과물로 음식을 구분하기 보다는 요리 방법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영어로 옮김에도 우리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선 찌개는 모두 ‘stew’로 통일하여 일괄번역한 듯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괄 번역조차도 문제가 있습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옛날 돈가스에 따려 나오던 밀가루를 푼 걸쭉한 수프, 국물이 거의 없는 빡빡한 질감의 수프는 영어로 뭐라 해야 하나요?
이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서양 문화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부족이 자리잡고 있다고 봅니다. 외국에서 – 주로 미국에서 – 스튜를 먹었더니 국물이 조금있거나 거의 없었다는 경험이 이런 번역을 가능케 했으리라 추측합니다. 음식에 대한 이해, 음식의 뿌리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위 ‘soup’의 정의에서 나오는 ‘typically savoury’라는 표현에서 ‘savoury’라는 단어를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사실 이 단어는 ‘풍성한 맛’으로 표현해도 좋지만, 엄밀한 의미에선 ‘설탕이 아닌 소금과 양념’을 넣어 더 진한 맛을 낸다는 의미입니다. 즉 소금과 양념을 통해 풍부한 맛을 낸 음식입니다. 갑자기 우스운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백종원 씨가 만드는 설탕을 넣는 김치찌개와 다른 음식은 어떤 범주에 들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한 분인 듯하네요. 그나저나 설탕의 부정적 영향, 당뇨는 물론이거니와 특히 암을 촉진시키는 역할이 점차 더 많이 밝혀지고 있으니 설탕을 넣을 때 고민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김치찌개라는 우리의 대표음식에 대한 표현이 조금 분명해졌나요?
갑자기 다른 표현을 사용하려니 이상하죠? 냄비, 뚝배기, 그릇에 담겨 나오는 ‘Kimchi soup’은 좀 덜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대체로 팬에 담겨져 나오는 ‘kimchi soup’은 더 이상하죠? 만약 후라이 팬에 담겨져 나오는 김치찌개를 ‘soup’이라 부르기 이상하다면 아래처럼 표현하면 어떨까요? 요리하는 용기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달리 요리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에 대해 어색하게 보는 외국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 생활에 익숙한 외국인과 미국인/서양인임에도 서양 음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의 표현이라면 대부분의 외국인은 김치찌개를 처음 접하더라도 어떤 음식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김치찌개.’ 워낙이 제 개인적으로도 좋아하고 대표적인 우리의 음식이라 이야기가 조금 길었습니다. 맛있는 김치찌개가 먹고싶습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