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노애락(喜怒愛樂)’
기쁨, 화남, 사랑, 즐거움.
어느 하나 삶에서 빠지지 않는 우리 삶의 부분들이죠. 삶에서 기쁨, 사랑, 즐거움만 누리고 분노와 화는 빼고 싶지만, 더하기도 빼기도 쉽지않은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각기 너무나 다르고 다르다고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 볼때는 뭔가 비슷하고 서로가 붙어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만물에 실체가 없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이 그런 깨달음의 말이겠죠.
내가 보는 방향, 받아 들이는 마음에 따라 같은 실체를 달리 보고 느끼는 이유일 겁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비유 ‘바다에 떠있는 얼음덩어리’가 떠오릅니다.
바다가 잔잔할 때는 평온합니다. 평온한 듯 하지만, 멈춰있지 않은 바다의 작은 일렁임은 우리의 감정에 크고 작은 변화를 줍니다. 행복 속에서도 크고 작은 불안과 화가 나타나며 불행 속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이 나타납니다. 강한 파도는 우리를 격하게 만들지만, 어느 순간 또 다른 큰 파도는 우리의 운명을 바꾸기도 합니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순간, 변화의 파도를 바랄 것이며, 행복하다면 지금의 행복이 가능한 지속할 수 있도록 파도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바다는 작든 크든 일렁임과 파도가 있는 것처럼 삶도 혼자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변화는 필연입니다.
위 비유처럼 우리 자신 속의 얼음덩어리를 움직이는 파도는 실제의 바다 파도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 속의 파도는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같은 변화에 다른 반응, 다른 방식의 극복이나 전환이 가능한 것은 사람마다 마음 속에서 일렁이는 파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의 삶은 혼자가 아니기에 온갖 일에 휘말립니다. 나쁜 것, 불행한 것은 비켜가고 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 큰 파도가 모든 감정을 뒤엎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Consolation
사람마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식은 다를 겁니다. 저는 음악을 통해 다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술이 위안이 될 때도 있으며 술로 위안을 다스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지만 후유증을 생각해 가능하다면 음악으로 다스리려고 합니다.
분노할 때면 강한 음악을 찾습니다.
예전엔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많이 들었습니다. 클렘페러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브람스 교향곡 1번 C 단조의 어두운 현악과 무겁고 둔탁한 팀파니로 시작은 저의 기분을 표현해주었고 이어지는 일렁임과 출렁임은 저의 분노처럼 오리고 내리며 위안을 주었습니다.
최근엔 바그너와 베르디를 더 자주 듣습니다. 터질듯 격하게 두드리고 내 지르는 ‘Dies Irae(분노의 날)’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악으로 잇습니다.
분노할 때 듣는 저의 최근 음악입니다. 이 음악을 아래 순서로 들어보세요. 분노에서 위안으로, 위안에서 평온으로 이어집니다.
1 분노와 슬픔
베르디의 레퀴엠 미사곡입니다. 50년대 토스카니니, 60녕대 줄리니, 90년대 가디너 등 좋은 연주가 많습니다. 많은 연주 중 Dies Irae를 가장 격한 분노를 표출한 연주는 54년 프리차이(Fricsay)라고 봅니다. 격한 분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래, 합창, 연주 모두 좋습니다. 녹음이 오래되고 모노이지만, 분노를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분노와 슬픔(lacrimosa:mourning)입니다.
2 Die Irae (Chorus) 2:05
3 Tuba Mirum (Chorus, Bass) 2:44
4 Liber Scriptus (Mezzo-Soprano, Chorus) 4:54
5 Quid Sum Miser (Soprano, Mezzo-Soprano, Tenor) 3:36
6 Rex Tremendae (Chorus, Soloists) 3:40
7 Recordare (Soprano, Mezzo-Soprano) 3:39
8 Ingesmisco (Tenor) 3:14
9 Confutatis (Bass, Chorus) 4:34
10 Lacrimosa (Soloists, Chorus) 5:22

2. La Campanella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곡을 편곡한 리스트의 La Campanella입니다. 이태리어 La campanella는 Bell(종,종소리)의 의미이며 꽤 종소리를 묘사한 느낌이 나는 곡입니다. 베르디 레퀴엠의 분노와 슬픔에서 위안으로 바로 넘어가면 변화가 지나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음의 타건이 많고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음악입니다. 분노와 위안 사이에 이 둘을 완충하는 뭔가의 부수는 듯함과 동시에 심장의 고동이 여전히 격하지만, 위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될 것입니다. 조르즈 볼레의 연주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치프라의 연주를 더 선호합니다.
3. Consolation
리스트의 피아노곡 ‘La Consolation:위안, 위로’는 위의 격함이 차분함, 평온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곡입니다. 조르주 볼레(George Bolet)가 연주를 오랫동안 들었지만, 최근에는 퍼라이어(Murray Perahia) 연주가 더 좋다고 느낍니다. 퍼라이어 특유의 부드럽고 마음을 파고드는 울림 소리는 평온과 위로의 느낌을 줄 것입니다.
4. 수녀원 성가
수녀님들의 성가(Chant)입니다. 좋은 Chant를 녹음하기 위해 세상 곳곳을 다니며 선택한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서 멀지 않은 Notre-Dame De L’Annonciation 수녀원에서 이루어진 녹음이라 합니다. 처음 이 음반에서 저는 수녀원 종소리가 끌렸습니다. 유럽 교회의 종소리는 묘하게 머리와 영혼을 맑게 하고 좋은 기운을 북돋우는 힘이 있는 듯하여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합니다. 더불어 이 음반을 들으면 들을 수록 수녀님들의 Chant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필연적일 수밖에 없기에 끌어안고 살아야만 하는 분노와 화. 쉽지않지만, 반드시 다스려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어떤 형태로든 통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음악은 우리를 위로하고 평온을 찾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음악을 올리면 좋겠으나, 불법이라 이미지로 대신합니다. 혹 아이튠즈를 이용한다면 위 음악을 언제든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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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제목: Consolation
작가: Edvard Munch
년도: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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