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2016년 3월 5일 니콜라우스 아르농크르(1929-2016)는 영면의 세계로 떠났습니다. 86세 생일 하루 전, 2015년 12월 5일, 그의 몸이 더 이상의 연주를 허락하지 않아 그 날을 끝으로 그의 연주는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르농쿠르에 대한 세상의 평판과 저의 존경은 늘 함께 했습니다. 일부 영국의 국수주의적이고 비뚤어진 비평가와 일부 무지한 우리나라 클래식 애호가에 의해 ‘기괴함’란 황당한 단어로 부당한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더 큰 세상은 존경과 사랑이 함께 했습니다.
그가 손댄 음악은 화제이자 돌풍이었습니다. 시간은 그의 음악을 사랑, 애정, 애착으로 자라게 했습니다. 때로는 반란이었고 때로는 새로움이었지만, 이내 그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을 제시했고 음악이 더 음악답게 했습니다.
베토벤 9번 교향곡에서 그가 새로이 제시한 저음의 강조는 새로움이 아니라 잘못된 악보의 수정이었고 그 수정이 음악에 얼마나 가슴이 설레게 만들었는지를 많은 사람은 곧 알게 되었고 더욱 베토벤을 좋아하게 했습니다. 그는 진부하고 맛없는 음악에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토스카니니가 했던 작업을 이었습니다. 아르농쿠르의 음악에 토스카니니가 겹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낍니다.
상업적인 가치보다 음악과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던 아르농쿠르의 열정 가득한 여행은 갑자기 멈추고 적막함이 흘렀습니다. 고요함의 소멸엔 정확히 3개월이 걸렸습니다. 연주회 취소는 삶을 마감을 의미한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기에 3개월이란 시간 차는 무의미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 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아르농쿠르를 봅니다.
글을 다시 보니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르농쿠르를 볼 수 없고 그의 새로운 연주를 더는 들을 수 없다는 슬픔에 마음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토스카니니가 했던 작업을 이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토스카니니가 기존의 타성에 젖은 음악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보고 또 봄으로써 놓치고 있는 부분, 작곡가가 의도하는 부분에 더 충실하려고 했던 작업을 아르농쿠르 역시 충실했다는 의미였습니다.
아르농쿠르는 한 발 더 나아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악보를 살피고 심지어 당시의 악기를 사용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음악이 바뀌거나 느낌이 바뀌는 것에까지 신경썼다고 합니다.
같은 연주라도 토스카니니 다른 수 많은 지휘자와 달리 들리는 이유, 아르농쿠르 음악이 달리 들리는 이유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