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알파고와 이세돌 간의 바둑 대국이 화제입니다. 바둑, 장기, 체스, 게임 등은 저와는 거리가 먼 영역이라 관심이 없었으나 점차 단순히 게임을 넘어선 인간 대 기계, 인간 대 컴퓨터, 인간 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t)으로 확장되는 상황에 무관심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AI 인공지능을 이야기할 때 영국의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과 미국의 존 설(John Searle: 1932~)을 뺄 수 없을 겁니다. 공학적이 아니라 인문학의 관점에서도 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긴 역사 동안 인간의 사고(思考)는 신(神)과 인간(人間)을 오갔지만, 마침내 신도 인간도 아닌 기계(器械)가 등장하는 시발점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인문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앨런 튜링과 모방 게임, 튜링 테스트
앨런 튜링은 에니그마로 불리는 독일의 암호해독기의 암호를 풀기 위해 현대 컴퓨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해독기(Crunching Machine)를 만들어 2차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독일의 에니그마는 너무나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 인간의 능력만으론 풀 수 없다고 판단, 기계는 기계로 대응한다는 생각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연산을 단축하는 기계를 만들어 마침내 암호 해독에 성공합니다.
2014년 영화 ‘The Imitation Game’을 보면 앨런 튜링에 관한 공부가 될 듯합니다. 이 영화는 셜록 홈즈에 나왔던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튜링 역을 맡았으며 카리비안 해적의 여주인공 키이라 나이틀리가 여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미국 imdb.com에서 40만 명 이상의 평가에서 8.1을 받을 정도로 인기와 평이 좋은 영화입니다.
The Imitation Game 이론은 인공지능에 관한 시험입니다. 당시 앨런 튜링은 The Imagination Game으로 불렀지만, 나중에 튜링 테스트(Turing Test)로 불립니다.
튜링 테스트는 서로가 볼 수 없는 공간에서 컴퓨터와 인간이 대화합니다. 시험자인 컴퓨터와 인간은 서로 볼 수 없는 방에서 대화합니다. 그리고 두 시험자를 볼 수 없는 곳에서 제3의 인간이 둘의 대화를 관찰합니다. 5분 동안의 관찰에서 컴퓨터와 인간을 구분할 수 없는 정도가 70%를 넘는다면 튜링은 이 기계를 인공지능이라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시험은 인공지능에 대한 첫 이론이자 시험 가설인 셈입니다.
존 설과 중국어 방(房) 사고(思考) 실험
하지만 미국의 존 설은 튜링 테스트를 통해 기계가 무언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며 ‘중국어 방 사고 실험(Chinese room thought experiment)’을 제시합니다.
방에는 중국어 단어 책이 있고 방 밖에서 중국어 단어 카드를 밀어 넣어주면 그 카드에 쓰인 단어와 결합된 단어를 찾아 방 밖으로 밀어내는 실험입니다. 이 실험은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조차도 방 밖의 제 3자가 보면 마치 아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으며 이를 인간의 영역으로 보았고 기계가 인간처럼 인식할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는 실험으로 제시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달
유진 구스만(Eugene Goostman)의 튜링 테스트 통과, 1997년 체스 챔피언의 패배, 2011년 퀴즈 대회 우승, 그리고 2016년 현재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등, 인공지능의 도전은 이어지고 가능성은 커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성장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상을 넘어 현실의 세계로 들어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이폰을 사용한다면 이미 시리의 뛰어남과 유용함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며, 무인자동차도 조만간 현실화될 것입니다.
단순한 빅데이터나 빠른 연산의 결과인가? 아니라면
인공지능이 현실에 닥쳤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단순히 축적되는 거대한 빅데이터와 주변장치의 발전에 따른 빠른 연산때문인지 혼란스럽습니다. 바둑과 알파고의 대결 역시 수 많은 경우의 수와 조합을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는 덕에 이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는 뚱딴지같은 사고와 데이터에 쌓이지 않은 것에 대해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지 못한다면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인공지능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의문이라기보다는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존 설의 말처럼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었을 때 우리는 그 답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 그 답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얻어졌는지를 알기 위해 뇌를 열어 인간의 뇌에서 뉴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지 않는 것처럼, 기계가 답을 얻었을 때 우리는 기계의 회로와 부품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을 생각한다면 인공지능에 대한 판단이 달라집니다.
비록 빠른 연산의 결과이든 빅데이터의 종합이든 연산 속도가 빨라지고 데이터가 쌓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떤 분야에선 이미 인공 지능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인공지능에 대한 회의는 사라집니다. 글자 그대로 Human Intelligent가 아닌 Artificial Intelligence입니다.
인간이 아닌 인공이며, 인간처럼이 아니라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두려움이 생깁니다. 초기엔 기계가 기계를 세팅하는 것이 아니라 세팅은 결국 인간이 시작하기에 더 두렵습니다. 인공지능의 유용함에 만취한다면 언젠가는 편리함에 따른 생각지 못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렵습니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vs 암호를 푼 기계,
저는 개인적으로 충격이나 계기/전기(轉機)라는 관점에서 볼 때 후자의 파장이 훨씬 크다고 여깁니다. ‘인공지능’이라 하지만, 더 진화한 기계라는 생각입니다. 지금의 방식이 아니라 뭔가 계기/전기(轉機), 즉 인간이나 동물의 뇌 혹은 가상의 뇌와 기계가 합쳐질 때 비로소 첨단 계산기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우리가 상상하는 ‘인공지능(AI)’가 탄생할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