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으로 기억한다. 한 유명한 잡지사에서 커피점 평가를 부탁받은 적이 있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유명한 한 사람과 함께 서울의 가장 핫한 커피점의 커피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평가를 포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평가를 하면 그 커피점이 장사가 더 잘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으나, 나의 솔직한 평가는 그 커피점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그들 커피에서 좋은 점이나 좋게 이야기할 만한 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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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나 지난 지금 너무나 많은 커피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겼고 전반적으로 커피의 상황은 아주 좋아졌다. 하지만 괜찮은 커피 찾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이탈리아서 흔하디 흔한 괜찮은, 마실만한 수준의 에스프레소 마시기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음식이나 음료는 먹고 마시는 사람의 주관적인 느낌이 작용하긴 하지만,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나에게는 너무나 맛없는 커피점이 압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도대체 대한민국 커피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것인가?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반박을 하고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뽑는 커피점을 추천해준다면 고맙겠다.
문제는 ‘맛 없다‘가 아니라 ‘음용 불가‘ 수준의 에스프레소를 뽑고 판매하고 있는 곳도 있다는 것이다. 점원에게 부탁하여 다시 뽑아도 나오는 것은 ‘음용불가’의 에스프레소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커피 맛있기로 유명한 집들이라는 것에 더욱 놀란다.
- 테라로사
- 폴바셋
둘 모두 커피가 맛있다고 알려진 곳이다. 신기하게도 두 집의 ‘음용불가’ 이유는 매우 흡사하다. 이들의 에스프레소의 진한 쓴맛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혀를 따갑게 찌르고 쏘는 것만큼은 견딜 수 없다. 나는 에스프레소 커피의 신맛, 쓴맛, 고소함은 미덕으로 여기고 즐기지만, 혀를 공격하는 자극까지 미덕으로 받아줄 만큼 관대하지는 않다.
테라로사는 5년 전쯤 아는 분께서 강릉에 직접 가서 사서 가져다 준 커피로 마셨을 때는 꽤 괜찮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종로와 양평 두 곳 모두 주문한 에스프레소가 이상해 다시 뽑아도 마실 수 없는 맛은 마찬가지였다.
폴 바셋은 역시 맛이 너무 이상하여 프랑스 딸이 계속 다시 뽑아보도록 압박해 여러 번 뽑았지만 마실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맛있다고 알려진 커피전문점들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어느 날 우연히 효자동 커피점에 들렀더니 그 커피점에서 옛날 그 사람의 느낌이 났다. 옛날의 골목에 있던 가게도 아니었으며 대로에 위치하고 규모가 매우 크고 유명한 커피점이었지만, 분명 그 사람의 느낌이 났다. 사장을 찾았더니 바쁘다 했고 조금 후 어렵게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역시 느낌대로 그 사장이었다. 그는 너무나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그 큰 커피 매장은 손님으로 넘쳤다. 그라면 성공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덩달아 기뻤다.
아쉽게도 그 날의 커피 맛은 옛날 내가 마셨던 그 커피맛이 아니었다. 덧붙이자면 그 날, 나는 프랑스 딸이 유명하다며 가보자해서 간 곳이었으며 커피 맛에는 둘 모두 불만족스러웠다. 다행인 것은 테라로사나 폴바셋처럼 음용불가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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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유행이지만, 아쉽게도 커피 맛을 즐기기 위해 갈 수 있는 커피전문점은 적어도 나에게는 아직까지 없다. 분명 바라는 것은 양적인 발전만이 아니라 질적인 발전도 따랐으면 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커피 맛은 옛날보다 무척 좋아졌으나 제대로 맛있는 커피전문점은 여전히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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