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화를 제외하면 동네산책 차림
등산이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은 사람들이 아마 저희일 것입니다. 일상복에 나이키와 언더아머의 초간단 가방. 유일한 등산장비라면 등산화입니다. 신발만 제외하면 한강공원 산책하면 될 정도의 차림입니다. 사실 크고 무거운 가방은 당일산행에 오히려 부담스러울 것이며, 옷은 편하고 간편한 스포츠웨어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하기에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없기도 하네요. 주말마다 시골마을, 산길, 바닷길, 등 조용한 곳을 찾아 걸으며, 지난달 금강굴에 잠시 다녀오며 좀 더 경치좋은 곳을 걷고싶어 갑작스레 택한 코스입니다. 올해는 6월 1일부터 개방이라 개방후 첫주말을 선택했습니다.
여정과 시간
서울 (12:00) – 설악산소공원주차장 (2:30)
설악산소공원 (4:40) – 비선대 (5:35) – 양폭대피소 (7:40) – 천당폭포 (7:55) – 무너미고개 (9:10) – 신선암 (10:00) – 마등령삼거리 (16:00) – 금강굴삼거리 (18:50) – 비선대 (19:10) – 설악산소공원주차장 (20:00)
속초숙박 – 속초 (5:00) – 서울 (8:45)
설악산 공룡능선 일주를 위한 전체 일정과 요약
서울에서 밤 12시 출발해 설악산 소공원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2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원래는 3시부터 공원출구를 개방하지만, 오늘은 2시 30분경부터 개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4시경에 출발해도 충분할 것으로 판단, 차에서 잠시 잤습니다. 잠이 오지않아 서성이다 잠깐 졸은 듯한데 눈을 뜨니, 4시 15분입니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간단한 요기를 한 후 출발합니다. 공원입장에 찍힌 시간은 4시 41분입니다.
출발하며 출발시간이 조금 늦었다는 것에 아쉬움이 내내 떠나질 않습니다. 만약 힘들어 제대로 걷지 못하면 캄캄한 밤에 걸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선대에서부터 무너미고개 삼거리까지 무리하지않기 위해 애쓰며 천천히 걸었고, 경치를 즐기고 사진을 충분히 찍었음에도 4시간 30분만에 도착한 것에 안도했습니다.
무너미고개부터 마등령삼거리까지의 공룡능선은 전체적으로 걷기좋은 길이었습니다. 쇠봉을 잡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구간도 심심찮게 있지만, 오히려 걷기에서 즐거움을 주는 양념같은 존재였습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위험하다고 느낀 구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자칫 방심하며 위험할 수 있겠지만, 그런 위험은 낮은 산에도 있기에 공룡능선이 특별히 위험한 코스라 하긴 어려워보입니다.
공룡능선에서는 최대한 즐기고 느리게 이동했습니다. 때문에 7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공룡능선구간 전체를 천천히 즐겼습니다. 문제는 마등령삼거리에서부터 시작되는 지겨운 길이었습니다. 특이할만한 경치도 부족하고 끝없이 내려가야 하는 길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내려오던 도중 아마도 혈당이 떨어져 긴급 단음식을 보충했고, 충분히 쉬어야 했기에 시간을 꽤 지체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몇킬로에서 함께간 애리 역시 탈진에 가까운 힘든 길이었으나 악바리처럼 쉬지 않고 걸어내려왔습니다.
오늘의 일정 중, 금강굴 800미터 전부터 설악산소공원 주차장까지가 가장 힘든 코스였습니다.
잘했다고 판단되는 것은 천불동계곡을 먼저 거친 것입니다. 오늘의 일정에서 가장 아름다고 좋았던 구간을 아침에 여유롭게 즐긴 것입니다.
이번 코스에서 저만 무릎이 까지는 작은 상처만 입었을 뿐, 모두 무사히 일정을 마친 것에 다행입니다. 힘들었지만, 좋은 경치와 길을 만끽한 하루였습니다. 아쉬움이라면 양양 혹은 속초의 화력발전소 때문에 공기가 탁하고 시야가 흐린 점입니다.
늦게 내려올 것을 감안해 속초에 호텔을 예약해두었고, 대포항에서 저녁식사한 후, 다음날 월요일 새벽에 서울로 향했습니다.
설악산소공원에서 천불동계곡, 무너미고개
지난번 금강굴을 다녀오며 비선대가 있는 계곡이 좋았다고 생각했으나, 천불동계곡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곳은 폭포답지 않은 오련폭포였습니다. 양폭, 천당폭포보다 더 좋았습니다. 골을 따라 올라가는 길 전체가 아름답고 즐거운 산행입니다. 소음과 냄새로 불편하게 한 양폭대피소만 아니라면 더 즐거웠을 것입니다. 양폭대피소만 제외한다면 무너미고개까지는 매우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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