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실체도 불명확합니다. 얼마나 치명적인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전파의 경로 등 모든 것이 불명확합니다. 오늘의 진실?이 내일은 비진실로 바뀌는 상황에선 확실한 것이 무엇인지 단언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신문이나 기사는 너무나 자신감 넘치는 보도를 남발합니다. 그리고 생각없는 민초는 이렇게 저렇게 휩쓸립니다. 생각없는 리더에 생각없는 민초가 넘치는 사회는 힘듭니다. 우리처럼 방역을 잘한 나라가 어딨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의 판단은 시간이 더 흐르고 코로나바이러스가 끝나거나 어느 정도 확실한 상황이 되었을 때 반문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철저히 차단하는 국가가 현명한지, 집단면역을 인내하며 정상생활을 하는 스웨덴이 현명했는지는 시간이 더 흐르고 모든 것이 종식되었을 때 판단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현재로선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최선이라 봅니다. 진짜 실체와 진실을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해서 정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위험할 것입니다. IT발달로 정보가 넘치지만, 교묘히 여론이나 생각을 조종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오히려 더 쉬워졌기에 어떤 정보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부의 말? 믿나요? 2020년 9월초 현재, 중국은 코로나 종식을 축하하는데 믿나요? 2020년 8월초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 성공적이라며 자화자찬하던 우리 정부의 말을 믿었나요? 8월 말부터 확산하던 코로나바이러스로 공포분위기 조성, 억압적, 고압적 방식의 방역을 믿고 따르나요?
자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배층에 자중을 요구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정부, 질병본부, 미디어, 이들에 자중을 요구하는 것은 끼리끼리의 바보쇼, 즉 그들의 특권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기에 바라기 어렵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닌데’라고 속으로 말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또 다른 시각, 목소리를 표현하고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침묵이 잘못을 행함보다 더 나쁠 때가 있습니다.
자중해야 합니다. 일반 국민이라도 자중해야 합니다. 자극적이고 뉴스답지 않은 뉴스, 한없이 가벼운 정부의 발표에 하나하나에 좋아하고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자중과 함께, 열심히 연구하며 ‘… requires further studies.’라며 신중한 과학자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아니면 물 떠놓고 코로나바이러스 귀신에게 사라져주시길 기도하는 편이 더 현명할 것입니다.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의 실체를 알기위해 세상 곳곳의 많은 이들이 엄청난 노력을 하고있을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의 명확한 기원과 실체, 얼마나 치명적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시시각각 새로운 소식이 나옵니다. 매번 새로운 소식이 나온다는 것은 진짜기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실체를 모를 때, 대처할 방법은 더욱 어렵습니다.
철저히 방역했다 자처하는 중국이 옳았는지 아니면 집단면역을 실행하는 스웨덴이 옳았는지 현명했는지는 시간이 더 흘러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무엇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대단한 결정’을 내리고 ‘자화자찬’하고, ‘너 때문’이라 비난하고, 일상과 기초 생계를 위협하는 ‘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스스로 무엇이 옳은 것인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함에도, 아주 작은 선택조차 개인이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를 박탈합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은 강제해야하나, 강제해야 하는 것, 권유해야 하는 것,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것에 관한 충분한 지식과 근거, 그리고 현명한 판단 없이 행한다면 국가와 국민이 치러야 할 대가는 엄청날 것입니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전국민/누구누구에게의 위로금/보조금 몇 푼이 아니라, 모두가 믿고 따를 수 있는 듬직함, 자중과 현명한 실행입니다. 지금이 더욱 그런 정부를 요구하는 시기입니다.
과거의 피와 땀으로 전례없던 현재의 부와 영광을 이어오고 있으나, ‘시험충’의 바보쇼가 계속되고, 이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기생충이 난무한다면, 그리고 왜곡과 자극이 판치는 세상이 이어진다면 이 영광은 서서히 쪼그라 것이며, 미지근한 물속의 개구리마냥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유라는 가장 기본적 권리 역시 서서히 쪼그라들 것입니다.
모두에게 자중과 현명함이 어느 때보다 더 요구되는 때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 본 ‘시험충’이 만드는 작은 오류들
아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해 잘못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모을 것입니다. 따라서 내용은 추가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시험충’의 의미
암기와 시험에는 매우 뛰어나 누구나 부러워할 타이틀과 지위를 획득하고, 갖은 방법으로 부를 축적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지만, 시험이나 잔머리 외의 깊은 사고나 현명함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낮은 수준의 지식인이자, 타인을 배려하거나 현명함도 없거나 부족해 타이틀과 부가 없다면 벌레취급받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
영어로는 ‘fucktard’ 정도일 듯합니다.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인 저능아를 일컫는 비속어입니다. 자신은 매우 똑똑하다고 여기지만, 다른 집단의 눈에는 문제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을 은밀히 비하해 부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시험충인지 확인하는 예
국어성적이 뛰어나지만, 실제 글을 쓰면 적절한 단어의 활용은 물론 맞춤법조차 어렵고, 수학성적이 뛰어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해결능력이 턱없이 불가능하며, 영어성적은 매우 뛰어나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대화조차 어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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