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하이든이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했다.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더 살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하며 지냈기 때문인지 그다지 마음껏 사랑을 주지도 못한 마음에 슬픔을 넘어 미안함과 죄책감까지 든다.
하이든과의 인연은 2016년 봄이지만, 실은 그 이전 순례길이 시작이다. 순례길을 걷던 중, 어느날 아침 길거리에서 한마리의 개와 마주친 이후, 그 개와 나, 둘이서 20킬로 이상을 함께 걸었다. 같이 걸었다기 보다는 그 개는 지속적으로 10~20미터 남짓 나보다 앞에서 걸었다. 그때 그 개와의 인연이 기억에서 떠나질 않아 같은 품종의 보더콜리를 들이게 되었다.
2016년 봄, 견주의 요구로 채 2개월이 되지않은 된 젖먹이 강아지를 시골로 데려왔다. 새끼 시절은 거의 매일 산책하며 시골을 꽤 즐겼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문이 없는 집이라 많은 시간 묶여있었다. 서울로 옮긴 얼마 후 코로나가 시작되어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진정한 록다운 상태로도 지냈다. 이후 지난해 초, 제주도 생활이 시작되었고 조금은 자유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기껏 1년 정도라 마음 아프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하이든에게 비교적 괜찮은 편이란 생각을 했고,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꽤 남았다는 생각에 충분한 관심을 주지못했다.
갑작스런 소식에 온갖 생각이 뒤섞인다. 6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단 한 순간도 우리를 힘들게 한 기억을 떠올리기 어렵고, 너무나 많은 즐겁고 행복한 기억과 더는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힘든다.
공격성이 없어 사람, 작은 강아지, 새끼 강아지, 심지어 야생동물에 까지도 공격한 적이 없다. 가끔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공격성이 없었다. 보더콜리 중에서도 작지않은 덩치였지만, 공격이란 것이 아예 없었고, 같이 놀거나 장난치려 한 기억밖에 없다. 유일하게 히스테리를 보인 동물은 날아다니는 새와 고양이가 전부였다. 이는 하이든에게는 공격이라기 보다는 놀이같아 보였다. 쏜살같이 잡으려 달려가지만, 따라잡은 후 같이 놀자고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오소리가 나타나자, 하이든은 미친 듯이 오소리에 쫓아갔다. 그리고는 주변에서 돌고 폴짝폴짝 뛰며 장난친다. 오소리는 당황하고 어리둥절 한 듯 보였다가 내가 가까워짐을 깨닫자 숲으로 달아났다. 하이든은 더 이상 쫓지않은 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강아지 하이든을 호칭할 때 의인화하지 못하게 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나를 ‘강아지 아빠’라 부르지 못하게 한다. 개와 사람의 구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칭보다는 존중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나를 비롯 사람들이 하이든을 사람처럼 대하지 않도록 하지만, 하이든은 사람의 말을 못할 뿐, 행동, 표현, 소통은 사람 못잖았다. 하이든을 처음 만나는 사람도 하이든과 잠깐만 함께 해도, 언어를 제외하면 사람과 쉽게 소통하고 교감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이든은 너무나 많은 표현을 한다는 것을 느낀다.
하이든을 떠나 보내며 아쉬움이 많지만, 무엇보다 고결한 품성에 더욱 미안하고 안타까움이 크다. 하이든은 내가 따르기 어려울만큼 자제하고, 인내하며 상대를 힘들게 하지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이든을 의인화하지 못하게 했고, 나도 사람과는 다른 존재로 대했다. 그래야만 서로가 조화롭게 어울려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점에는 후회나 아쉬움이 없다. 차갑고 엄하게 대했지만, 마음 속에는 마땅히 존중함을 받아야 할 존재였다. 나도 아내도, 아들들도 그랬다. 지금 기억하면 주변의 친구나 지인, 누구도 존중함 없이 하이든을 대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 고맙다.
하이든이 이곳을 떠났다. 지금까지 하이든은 강아지였지만,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부터 하이든은 나에게 개가 아닌 존재가 되었다. 이 세상이 아닌 곳에서는 개의 형상이 아닐 수도 있으며 심지어 성스런 존재일지 알 수 없다.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는 보여지는 모습보다는 마음과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평가받는 세상이기를 바라며,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하이든이 보여준 그 따뜻한 마음, 천진함, 순수함, 고결한 영혼에 걸맞는 존재로 태어나길 바란다. 이미 하이든은 나보다 더 위의 숭고한 존재다. 내가 바라며 기도하는 하이든은 내가 따르고, 떠받들고, 기려야 할 존재가 되었다. 하이든은 개로 기억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고결한 영혼으로 기억해야 할 존재다.
순례길에 우연히 만난 계기가 인연으로 이어진 하이든, 소통하고 교감했지만, 무엇보다 고결함을 남기고 간 하이든. 내 마음 속에 하이든은 Saint Haydn으로 남을 것이다.
하이든을 기리며…
Remembering the purity and the nobility of a short-lived dog
2016.03.28 – 202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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